용수사
석가모니불 봉안 법회
용수사는 고려 명종11년(1181년)에 최선이 기록한 ‘용두산용수사개창기’에 따르면 옛날 오래된 절터에 봉화 각화사 주지로 있던 성원이 의종 원년인 1146년에 암자 몇 칸을 지은 뒤 입적하자 그의 문인 처이가 왕찰로 왕실과 각별한 친분이 있던 각화사 석윤에게 부탁해 지원을 요청했고, 석윤의 건의로 의종이 일관인 영위를 보내어 터를 살펴보고 용수사라 사액하고 지방관으로 하여금 절의 증축을 돕게 하였다. 1165년 본당을 비롯해 요사, 강사, 및 창고, 부엌 등 90여 칸을 완공했다. 석윤의 입적 뒤 주지를 이어받은 3대 확심 때에 용수사 불사가 완성되었다. 불사가 완료되자 명종 8년에 국왕이 차와 향, 찬미하는 글을 보내어 700여 대중을 모아놓고 화엄법회와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대를 이어 왕들의 지원이 지속되었는데 명종은 향복사의 노비와 토지를 용수사에 내리고 천복과 기일제를 올리는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고 한다.
고유번호 |
P2017000000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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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일자 |
2000년대 |
복제방법 |
사진스캔 |
촬영장소 |
옛주소(지명) - 경북 안동시 도산면 운곡리 273-1
현주소(지명) - 경북 안동시 도산면 용수길 2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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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용수사, #용수사 금호비, #석가모니불 봉안 법회 |
촬영자 |
신규원 |
제공자 |
신규원 |
라이센스 |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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