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시인에게 보낸 김상옥 시인 편지와 지례예술촌에서 함께 찍은 기념사진
초정 김상옥(1920~2004) 시인의 편지
초정艸丁의 편지
내게서 첫 시집 《개안》을 받은 김상옥은 원고지에 칸을 무시하고 빽빽하게 쓴 답장을 석장이나 써서 보내 왔다. 내가 평생 받아본 모든 편지 중 가장 긴 편지였다. 그는 편지에서 “내가 단정해서 평하기는 염치없는 일이나 우리나라 현대시 중에 가장 아름다운 시가 〈라일락〉과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라고 말하고 싶읍니다.”라고 썼다. 이러는 그를 어찌 찾아뵙지 않을 수 있을까? 어째서 내 시를, 그것도 〈라일락〉같은 다분히 모던한 초현실주의 시를 시조의 대가인 그가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지 듣고 싶었다. 상경하여 오전에 피천득 선생을 찾아 뵙고 오후에 초정께 전화를 드리고 아파트 방문을 열었을 때 그는 중풍으로 인한 반신불수의 몸으로 방바닥에 누워 있지 않는가! 나는 금방 그가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와 〈라일락〉이 어째서 그에게 그렇게 감동적이었는가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병져 누운 칠십 노인에게 적막이란 단어는 사무쳤을 것이고 특히 〈라일락〉엔 휠체어가 나오는데 그 또한 휠체어 신세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정원 한 쪽의/ 라일락 그늘에 서서/ 그녀는 환히 웃고 있었다.
나는 반가웠으나/ 휠체어에 앉아/ 그녀를 향해 쓸쓸히 웃어 주었다.
내게로 닥아 올 때 / 웨이브 진 머릿결이/ 옛날처럼 나부끼었다.
손길이 이마에/ 꽃향기로 얹히더니/ 시야엔 다시/ 라일락 꽃더미 뿐--
그때 나는 내 속에서/ 남몰래 울고 있던 한 사내의/ 울음의 끝부분을 듣고 있었다.
-라일락 전문
그는 이 시를 읽으며 고독 속에 기약 없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고 또 울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그가 기적적으로 털고 일어나 9년 후 내 세 번째 시집 출판기념회 때는 안동까지 와서 축사를 해주었던 것이다.
고유번호 |
P20240000016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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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일자 |
1980년대 |
복제방법 |
사진촬영 |
키워드 |
#지례예술촌, #김상옥시인, #김원길시인, #편지 |
촬영자 |
미상 |
제공자 |
김원길 |
라이센스 |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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