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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열일-고군분투 청춘들

  • 구자을(문화기획자)
  • 2022-05-03 오후 3:33:06
  • 547

고군분투 청춘들

 

 

 

솜아트

성.다.솜. 작가 (33)

 

태화중앙로

 ▲ 성다솜 작가 (ⓒ구자을) 

 

시내에서 벗어나 골목길을 걸을 때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오래된 담장을 수놓은 벽화가 아닐까 한다.

예전에는 전시회에 가서야 볼 수 있던 미술 작품들이 우리의 생활공간으로 들어와 만나볼 수 있어서 더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예술 분야도 우리 생활에 녹아들어 조화를 이루며 일상의 한 분야로 잡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안동에서 그림을 그리는 성다솜 입니다.

 

 

화실에 식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이렇게 활동하게 된 과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간략하지 않은 부분을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니 조금 난감하지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웃음) 미술은 초등학교 3학년 쯤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처음 접하 게 되었어요. 피아노 등 다른 활동보다는 더 재밌어 서 계속해서 배우다 보니 입시까지 쭉 이어지게 되면 서 안동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식 물을 주제로 한 작품은 대학교 3학년 때인가부터 시 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작품 주제로 식물을 선택한 특별한 의미가 있었나요?

미술활동을 하는 분들이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찾 고자 하는 마음은 비슷할 것 같아요. 저의 경우 어릴 적 아버지가 사주신 작은 선인장에서 출발한 것 같아 요. 처음으로 제가 책임져야 할 생명체를 맡게 된 거 예요. 매일 관심을 주면서 물도 주고 했었는데, 금방 시들어 버렸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선인장이 사람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뒤엉킨 선인장들이 서로 상처를 내면서도 위로와 공 감 그리고 치유가 되듯,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 상 처주기 쉽지만 상처받은 것을 치유받는 것도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잖아요. 수많은 가시에 찔리기도 하 지만 치유받고 치유해 주는 관계가 사람들의 관계 라고 생각했어요. 초기에는 선인장을 많이 그리다 가, ‘내가 이렇게 가시 돋쳐 있어야 하나?’ 라는 생각 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선인장뿐만 아니라 다 양한 식물로 확장해서 작품을 하게 되었어요.

 

뒤에 보이는 여인초를 닮은 작품이 매우 인상적인데, 앞에 있는 화분을 보고 만든 건가요? 

 

맞아요. 설치작업을 계획하고 제일 처음 만든 작 품이었는데, 키우던 여인초를 단순한 형태로 드로잉 해서 제작하게 되었어요. 작품 제목이 ‘기르는’인데 이때 작업 했던 식물, 동물들은 다 기르던 것들이었 어요. 특별한 애정이 있는 소재였어요.

 

대학 졸업 이후 이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 건가요?

지금 공간은 세 번째로 구한 작업실이에요. 첫 번 째 작업실은 대학교 친구와 함께 구했던 가요방 위 3층이었어요. 친구가 대부분의 보증금을 내서 어렵 게 구한 작업실 이었지만, 밤이 되면 노랫소리가 들 리고 복도에 큰 소리도 많이 들려 자주 가지 않았어 요.(웃음) 그리고 작품 활동을 위한 작업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오는 일들로 바빠 갈 시간도 없 었죠. 이런 삶에 작업실이라도 없으면 작업을 영영 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에 자주 가지 않더라도 공 간은 유지했어요.

일은 그림 그리는 일들은 다 했던 거 같아요. 미술학 원 강사, 교제 삽화, 페이스 페인팅, 벽화, 조형물 채 색, 무대 컬러링 등... 그러다가 대학원을 간 이후에 는 학교 작업실에서 작품을 제작했어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벽 화를 더 많이 하게 되었어요. 강사는 출퇴근이다 보니 개인 작업이 목표인 저에게 맞지 않았거든요. 학 교 졸업 후에는 이하리에 있는 문천 초등학교(폐교) 를 작업실로 구하게 됐어요. 그곳은 시내와 멀어서 싸고 넓었지만 겨울엔 너무 추웠고 여름엔 더웠어 요. 그래도 그 작업실을 2년 6개월 동안 사용하면서 제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어요. 취향이 확 실하게 생겼거든요. 이때부터 식물을 소재로 작품을 하게 되었고 추구하는 작업방향이 확실해졌어요. 시 간이 흘러 사업적으로 조금씩 자리 잡을 때쯤 제 취 향으로 가득한 현재의 작업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서 ‘아 진짜 발전했다.’ 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벽화작업을 하면서 지금의 공간을 마련했다니, 그만큼 의 뢰가 많이 있는지와 벽화 작업을 할 때에도 작품 활동을 계 속 하는지 궁금합니다. 

 

의뢰가 많은 정도는 아니고, 생활비가 떨어질 쯤 되면 들어오고 했던 것 같아요. 벽화 작업은 의뢰하 시는 분의 요구에 맞는 작품을 그리는 거라 상황이 완전히 달라요. 제가 그리고 싶은 작품을 그리지는 못하지만, 인물부터 동물, 꽃 등 다양한 작품들을 그 리게 되는데,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장점은 있어 요. 하지만 그럴수록 벽화 작업이 끝나면 제 작품을 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지금은 제 작품에 전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성좌원에서 전시를 진행 할 때였어요. ‘안동에도 이런 멋진 공간에서 전시가 가능하 구나!’ 하고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성좌원에서의 전시를 어떻게 진행하게 되셨나요?

 

사실 전시를 할 마음은 없는 상태로 그냥 성좌원 이라는 공간을 보러 갔었어요. 그런데 가서 보니 너 무 예쁜 공간이기도 했고, 제가 하는 작업에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었어요. 그 공간에 대한 사심이 있었 던 거죠.(웃음) 함께 일하는 대표님을 설득해서 공 모에 통과하고, 전시 공간을 만들어 나갔어요.

 

성좌원 공간에서 작가님 전시는 물론 아카이브 파트도 담당했다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아카이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성좌원 공간이 워낙 오래된 곳이라 지켜야 했고, 그곳에 계 신 분들의 감춰진 인생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꺼려온 공간을 지키면서도 제대로 알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던 거예요.

 

사실 제가 아카이브를 맡게 된 이유는 외부에 맡길 정도로 사업비가 부족했던 현실적인 부분이 있긴 하 지만(웃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성좌원 관계자 분들과 이야기를 해 나가면서 제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었어요. 그곳에서 제일 많은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대표님과 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 행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더 깊게 들어가지 못했던 부분 이 아쉽지만, 제가 아카이빙 한 영상과 전시물들을 통해 많은 분들이 성좌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 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는 부분이 더 뜻깊었던 작 업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성좌원을 활용한 다음 전시가 계획된 부분이 있으세요?

아직 계획이 잡혀져 있진 않고, 지원 사업이나 공 모전이 있다면 더 이어나가고 싶어요.

그럼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랑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식물공동체라는 시리즈 작업을 계속 할 것 같아 요.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칠 예정이구요. 앞으로도 전시가 잡혀있어서 관련된 작 업을 계속 하고 있어요. 저는 일반적인 평면 작품이 아니라서 전시를 하게 되면 멀더라도 그 공간을 본 후 어떤 작품들을 전시하고 어떻게 설치해야겠다고 미리 계획을 하는 편이거든요. 기존에 만든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지만, 그 공간에 맞게 제작을 하는 작 업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단순 개체들이 아니라 <식물공동체> 라는 작품은 의미도 남다를 것 같은데, 좀 더 설명 부탁드려요.

제가 그리는 <식물 공동체>에서는 인간 공동체에 원하는 것들은 접목 시켜요. 그 속에 함께 살아가야 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기본이며 모 두 다르지만 차별할 수 없고 다름을 인정하며 조화 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해가는 과정인거 같아요. 인간은 모든 것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려고 고민하고 노력해야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올바른 공 동체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성다솜 작가를 만났을 때 물감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 는데 그 모습이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마치 그 모습이 하나의 미술 작품 같이 보였다.

작업복에 색색의 물감자국들은 벽화작업을 하면서 묻은 흔 적들과 높은 곳에 롤러 작업을 하면서 떨어진 흔적들이 자 연스럽게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마치 우리 생활공간에 함께하기 위해 오랫 동안 작업한 노력의 흔적이라 더 멋있게 보였던 것이 아닐 까 생각된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응 원하고 관심을 가져야겠다.

 

 

 

 

현화실

김.재.현. 작가 (35)

 

목성교길

 

 ▲ 김재현 작가 (ⓒ구자을)

 

안동시청을 우측에 끼고 있는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보이는 큰 건물 2층 모퉁이에 ‘현화실’이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띈다.

도심 속 골목 안의 공간이지만  화실로 들어서면 녹색의 화분들과 함께 나무와 숲을 주제로 한 커다란 작품들로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숲과 같이 넓은 포부를 가지고 노력하는 청년 작가를 만나보았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풍경을 주제로 작가활동을 하고 있는 김재현입니다. 화실을 운영하면서 수업도 하고, 개인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활동하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 부탁드려요.

영명학교에서 특기적성 수업, 안동, 영주 수화통역 센터에서 미술수업을 했었습니다. 수강생들 작품으 로 전시회도 열었었구요. 이제는 수업활동은 정리하 고, 개인작업과 전시활동에 좀 더 전념하기 위해 소 수의 수강생을 지도하는 화실을 운영하면서 생활하 고 있습니다.

 

 

제가 만나본 작가분들은 어릴 때부터 흥미나 재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작가님은 언제부터 미술을 접했나요?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미술학원을 다니거나 특 별히 그림 그리진 않았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미 술수업을 몇 번 받은 후 미술선생님께서 연락하셔서 미술부에 들어오라고 권하셨어요. 당시에는 단순 동 아리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미술부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미술 특기생으로 입시 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공부를 하 는 것보다는 저도 이 방면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입시를 거쳐 계명대학교 서양학과로 가게 되고, 쭉 미술을 하게 되었어요.

 

졸업 이후 활동을 어떠했나요?

 

졸업 후 학교에서 인턴생활을 하면서 미술을 계속 할지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 친구가 먼저 자리 잡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93뮤지엄에 들어가 활동했어요. 월급을 받으면서 의뢰를 받아 작품을 그리 거나, 작품 보수를 하면서 개인 작업을 했었죠. 그곳에서 활동을 끝내고 안동으로 돌아온 후에 결혼 도 하게 되고 용상에서 화실을 차렸는데, 잘 안됐었 어요. 1년 동안 수강생이 3명이었나……. 그러면서 생 각한 것이 '내 작품을 열심히 해야겠다. 작업밖에 탈 출로가 없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 꽃도 그리고 정 물도 그리고 하면서 간간히 작품이 팔리기도 하면서 생활을 이어나갔어요. 그러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화실 한켠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었는데, 생활공간 분리를 위해 이사도 해야 했죠. 그러다가 상황이 좀 나아질 쯤에 운영하던 화실 계약이 끝나서 시내 쪽 으로 이동하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한 것이 아니라, 고교 시절부터 미술 을 하게 되었는데, 저처럼 일반인의 관점에서 물어본다면 작가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인가요?

 

친구들이 종종 이야기해요.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서 좋겠다.’라구요. 그것도 맞는 말 이죠. 제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 면서 먹고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직업적인 부분으 로 넘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직장에서 느끼는 책임감 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것이 좋 고, 힐링이 되곤 하지만, 그런 힐링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그릴 때이고 그렇지 못할 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소속된 갤러리에서 의뢰가 들어와서 '이런 스타 일로 그려주세요.' 했다면, 제가 이미 그렸던 그림이 고 별로 내키진 않더라도 그려야 할 때가 생기는 거 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단순히 제 작품 활동을 한 다고 말하기보다 미술을 하는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 이 들어요. 그리고 일반 사람들보다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서 좋겠다고는 하지만, 장점이자 단점으 로 작용해요. 직장에 다니면, 해야 할 업무들이 정해 져 있어서 그 일들을 수행하면 되지만, 저의 경우에는 앞으로 해야 할 업무계획을 세워야하고 직접 수행해 야하니, 1인 사업자 대표처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 죠.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점과 그림이라 는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허무하지 않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열심히 해도 그 결과물 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회사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 까요.

 

작가님의 현재 컨셉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제가 주로 하는 작품으로는 숲인상, 자연인상, 아 카시아 시리즈와 나무인상, 정물 등을 하고 있는데, 작품 스타일은 계속 확장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 같 아요. 학창시절 때 정물, 인물, 풍경 등을 그리면서 효 과적으로 그리기,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그리는 등의 기술들을 익혔어요. 졸업을 할 시기쯤에 몇몇 친구들 은 각자의 컨셉을 잡아서 졸업 작품을 준비했는데, 저는 그때까지도 제 작품의 컨셉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어떤 컨셉을 잡게 되면, 그 컨셉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아직 그 부분이 명확하지 못하고 지리산(설악산) 풍경 작품을 그리 며 마무리를 했어요.

이후 헤이리에 가서 (안동에 돌아와서) 작업할 때 풍경작업을 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러 많이 다니면서 다양한 작품들을 그렸었는데, 그러다가 숲 인상 시 리즈의 첫 작품 형태가 나오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 작품을 확장시켜보자는 생각으로 같은 작품을 좀 다른 느낌(추상적)으로 그려보기도 하는 과정에 서 제 독특한 표현 방법이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냈고, 여행을 좋아하고 산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풍경을 쭉 그려왔었는데,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저만의 표현법이 생긴 거죠. 개인 전 제목을 ‘멀리 가까이’로 하고 있는데, 멀리서 보았 을 때 자연의 모습, 좀 더 가까이서 보았을 때 자연 의 풍경들을 다양하게 표현해요.이렇게 자연스럽게 저만의 스타일이 만들어 지게 되었어요.

 

안동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환경은 어떤가요?

안동은... 정말 좋은 도시죠. 조용해서 작품 활동 에 전념하기 좋고, 재료 구하기도 수월하구요. 그리 고 안동 출신이라면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던지 할 수 있는 안정된 여건의 장점이 되죠. 단점은 많은 사 람들에게 내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거예요. 몇 개의 갤러리가 있고, 전시를 할 수는 있겠 지만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큰 도시에서 전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방의 특성상 전시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림을 보러 잘 오질 않다보니, 많은 작 가들이 서울에서 작업을 하려고 하죠. 그럼에도 가 장 큰 장점은 이만큼 커다란 작업공간을 갖추기가 수월하다는 점이예요. 요즘에는 지방에 몸을 두고 있더라도 공모전 등을 통해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전 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지방에서 작업 하더라도 꾸준히 준비하고 넓게 바라보고 활동한다 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역에서 열심히 노력해나갈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본인의 작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활동을 어떻게 보여줄지 포트폴리오를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갤러리나 공모전에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모두 보여줄 수 없 다보니 포트폴리오 제출을 요구하거든요.

 

이런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데, 선배들이 어 떻게 해서 공모에 내고 전시를 하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배워야 해요. 저는 대구에서 대학을 나왔고, 교 수님이나 선배님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셔서 쉽게 접 할 수 있었는데, 안동에서는 이런 부분이 잘 이루어 지고 있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 까워요.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 포트폴리오 잘 준비하는 것, 그리고 겁먹지 말고 부 딪치면서 공모에 내보길 권하고 싶어요. 인터뷰 하러 오라고 하면 인터뷰하러 가야 하구요. 저도 학창시 절 때 그림들을 챙겨서 지하철을 타고 가서 인터뷰 하고 했거든요. 요즘은 그렇게까지는 잘 안하려는 것 같아요.

 

안동(지방)에서 젊은 작가들을 위해서 지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안동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서울 등 대도시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갤러리 보다는 대도시의 아트페어와 같은 큰 행사가 열릴 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다면 확실한 홍보효과가 될 수 있거든요. 미술시장 에 개개인이 들어가긴 힘들지만, 신인 작가들을 이런 큰 시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2021년 한 해. 각 지역을 이끌어 나갈 많은 청년들이 대도시로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에 남아 활동하고 있는 청년을 찾아 인터뷰하며 알리는 코너를 진행했다. 필자인 나 역시 청년 시기 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보내다 몇 해 전 귀향했기에 어느 날 궁금 증이 생겼다. ‘이곳에서 자리 잡고 있는 청년들은 어떤 마음가짐 으로 생활하고 있을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청년, 새로운 꿈을 가지 고 노력하는 청년, 대도시에는 있지만 이곳에 없는 시장을 개척 하는 청년, 타지에서 왔지만 안동이 좋아 정착한 청년, 지방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넓은 꿈을 이어나가는 청년…….

 

인터뷰를 이어오는 내내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최 선을 다하는 이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더 뜻 깊은 한 해였다. 그리고 만나보진 못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을 청년들도 함께 응원하고 싶다.

구자을(문화기획자)
2022-05-03 오후 3: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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