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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 더 오래된 이야기⑦-몽블랑 표구점

  • 강수완(시인)
  • 2022-05-03 오후 3:14:58
  • 539

▲ 몽블랑 표구점(ⓒ강수완)

 

명문의 글씨를 받아 보관하던 차에 혼자 보기 보다는 여럿이 감상 할 수 있는 한옥 찻집 벽에 걸기로 마음먹었다. 

안동의 솜씨 좋은 표구점을 지나 이곳 가게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망설임도 없지 않았지만, 오래 된 간판에 눈이 머물러 있던 차라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글씨 역시 다시 받을 길 없는 인연이었지만 명문 보다는 이 자리의 내력이 궁금했다. 

한곳에서 오래 일에 몰두한 흔적인 간판의 이력으로 변화에 아랑곳없이 가게를 지키고 이끌어 가는 다소 외곬의 꿋꿋한 업장과 사람을 찾는 중이라, 솜씨 좋은 소문 보다 낡은 간판과 주인과 업이 우선이었다.

짧은 글과 찻잔을 담백하게 그려 준 다른 이의 작품까지 얹어서 들렀을 때는 바람이 스산한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몽블랑 표구점. 박종갑 사장. 키가 작고 체구가 아 담한 주인이 혼자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반갑게 일어선다. 가게 안 양쪽으로 표구를 마쳤거나 기다리는 작품들과 그림과 글씨, 사진 등이 즐비하게 늘어 있었다. 예술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일까. 표구 주문을 넣으니 따로 장부 없이 작은 종이에 표구 흥정 금액과 전화번호만 적어 놓는다. 기다란 흰 종이에 연필로 슥슥 빠르게 적은 기록으로 맡긴 사람과 작 품을 일일이 다 기억하여 찾아준다는 말인가 의아 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내 신상이라고는 전화번호 하나뿐인 접수를 믿기에는 갸우뚱했더니 앞 손님들 이 주르륵 적힌 다른 종이를 불쑥 내밀며 안심하라는 듯 펼친다. 이런 못미더움을 여러 번 당해 보았다는 듯 가볍게 웃는다.

지긋한 나이가 곧 나름의 방법이겠으므로 일단 맡기고 자리에 잠시 앉는다. 몸집에 비해 목소리가 짜랑하다. 나이 든 안동 남자들은 대개 무뚝뚝한 편인데 말씨가 사근하다. 경안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방서와 교도소에 잠시 근무했었던 이력을 들으니 언뜻 표구와 연이 닿지 않았던 젊은 시절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눈 감았 다가 떠 봐’, ‘앞으로 나란히’ 등 동작 몇 번 시키고 합격했던 옛 시절이었다나. 아무렴 그러기야 하였을까마는 그때는 공무원 되기가 일반 회사보다 좀 쉬웠다는 때라니, 그 당시 안동고등학교 서무실(지금 의 행정실) 근무직 월급의 3배가 K자동차 월급이었단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일반 회사 월급 따라 옮긴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니 언뜻 들어도 시대상황이 엄청 바뀐 요즘이다. 

 

 ▲ 몽블랑 표구점 사장님(ⓒ강수완)

 

 

당시 와룡 주민 가구 수 70여 호의 중학생 13명 중 고작 2명이 중학교에 진학했다한다. 그야말로 상 전벽해의 세월이 되었다. 왕복 40리 넘는 산길을 걸 어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모두 골짜기에 흩어져 살 아 당연히 두 다리가 뻐근하게 걸어야 학교에 가는 줄 알았단다. 중학교에 못 간 친구들 대개는 공장으 로 나가거나 도시의 친척집에 얹혀 기술을 배우러 떠나고 촌에 남은 친구들은 집안의 힘든 농사일을 거 들었다. 어른 지게 보다 좀 작은 지게를 따로 만들어 지고 다니며 일손을 돕느라 해가 지고 어깨가 짓무 르도록 일찌감치 일에 묻혀 살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를 중간에 그만 두고 농사를 돕던 친구 들도 흔했다 하니, 그 어린 몸들이 기억하는 그 시절 의 배고픔과 못 배운 설움과 미련을 어떻게 풀고 살 았을까 싶다. 지금은 어엿한 시대의 아버지와 어머 니로 한 집안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을 연세들이 새삼 애틋하다.

 

안동교회 옆이라 교회 손님이 좀 많을 줄 알았더니 그와는 별 상관이 없다한다. 오히려 종교 관련일 로 일거리를 맡기러 오는 사람보다 각층이 두텁다. 문화예술인들이 방문하는 횟수야 적지 않지만, 집 안에 걸어 두고 싶거나 각자 의미 있는 작품들을 보 관하고자 하는 사람이 훨씬 많이 찾아 와 표구를 맡긴다 한다. 서예작품과 동양화, 서양화는 물론이고 집안에 내려오는 그림과 서예작품이 보관 잘못으로 습기 차거나 오염되어 복원하는 경우도 있다. 

 

 ▲ 몽블랑 표구점 내부(ⓒ강수완)

 

 

그러고 보니 태극기도 있고, 유명 시구절도 있고, 동판화도 있다. 달마도 있고, 믿음 소망 사랑 액자 도 나란히 있다. 이 표구점에서는 종교끼리 무척 다 정하다. 고흐의 해바라기 모사품과 박수근도 있다. 때로 가훈이나 사훈 등을 의뢰해 오는 경우도 있다. 완성하기 전의 액자 틀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구 석이 사람 사는 세상과 닮았다. 길이와 색깔과 모양 이 다른 틀들이 짧거나 길게 세워져 있다. 밋밋한 것, 화려한 것, 수수한 듯 단순한 것, 은색이나 황금색 으로 빛나는 것, 나무 본연의 색 그대로 고즈넉한 것 등 서로 꿈꾸는 세상이 다르지만 섞여 있어 아름다 웠다. 어느 작품을 만나 어떻게 살아갈지 자못 기다 려지는 틀. 

 

외탁하여 키가 좀 작은 체구이지만 대신 머리가 빨리 희지 않는 점도 물려받아 염색하지 않는 이점 이 있어 그 또한 좋은 일이라며 목소리가 밝다. 비누를 쓰지 않고 세수를 하는 건 기본이고 화장품도 바르지 않는다. 잘 아프지 않아 신약을 거의 먹지 않으며, 평소 몸을 생각해 하는 일이라고는 종아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집에서 직장까지 20여 년을 걸어 다니며 체력을 올리고 생강과 마늘로 몸 온도를 높여 면역을 키운다. 건강검진을 거르지 않으나 병이 들면 수술은 가급적 않고 살다가 섭리대로 흙으로 돌아 갈 생각이다. 이는 의료진이 들으면 위험할 소견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이면에는 늙은 어머니가 있다. 요즘도 하루 한 번 꼭 전화하고 안부를 묻는다는 어머니를 위해서 건강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눈을 감는다는 지론이 생겼다. 세상에 아무리 귀하다, 귀하다 하는 것들 많아도 내 한 몸 만큼 귀한 것이 있으랴 생각한다. 아직까지 스물여덟 개 멀쩡한 이와 건강한 잇몸 그대로이며 돋보기 없이 신문을 볼 만큼 눈도 건강하다. 이는 숱한 노력 의 결과로 젊어서부터 술 담배는커녕 설탕과 청량 음료 등은 피하고 잇몸 마사지로 관리한다. 건강에 좋다는 건 못하더라도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피했다. 형은 건강염려증에 쩨쩨하다던 동생이 요즘 은 우리형님 대단하다고 추켜 준다. 그 동생은 지금 건강도 시력도 치과질환까지 속속 문제가 생겨 고생 중이다. 

 

집안의 맏이로 살아왔을 무게가 저런 신념을 갖게 하였을까. 첫째 건강이요 둘째 빚 안 내는 것과 경찰서 안 가고 살다가 죽는 것이 셋째 소원이라 한다. 단순하면서 기본적인 철칙이다. 죽음은 저절로 받아 들이라는 것이다. 다만 어머니보다 하루 오래 살아 서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 갑자기 바짓단을 걷어 올 리며 보여 주는 종아리에 모래주머니가 있다. 양말 위로 드러난 실천과 노력이 내년에 아흔이 되는 어 머니께 드리는 그의 효심이다. 기본을 생각하는 이러한 마음이 표구점에도 깃들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간판도 허름한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가게를 지켜 왔으며 앞으로도 꾸려가지 않을까.

 

액자에도 여러 기법이 있다. 

 

여백을 어떻게 어느 정도 남기고 마무리하는지, 평 액자로 하는지, 전시 액자로 하는지, 또는 판넬이나 박스식 액자로 하는지와 틀 역시 원형으로 할 것인 지, 네모로 할 것인지, 세로형으로 할 것인지, 가로형 으로 할 것인지 장방형으로 할 것인지 등등을 결정하 는 일은 의뢰해 오는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늘 최적 의 조건을 찾아 세심하게 결정하여 맞추어야 한다. 

 

그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 이에 전통적인 표구 형식인 마루형 표구는 가장 일반적인 표구방식으로 대체로 무난하여 선호하는 표구이다. 값 또한 저렴 하여 많이 권하고 또한 선택한다. 

 

그러나 귀한 작품이거나 값비싼 작품들은 좀 더 좋은 표구를 권한다. 보관상 문제점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보관에 용이한 방법을 택한다. 좋은 표구와 일반적인 표구는 액자의 모퉁이 부분을 잘 살펴보면 일반인도 대체로 눈에 보인다. 마감처리 기법이 그 러하다. 삼각형 모양으로 나무를 덧대어 오래 사용 해도 끝이 벌어지거나 틀어지지 않는 견고한 방식을 적용한다. 또는 액자 뒷부분에 마감으로 맞닿는 곳 을 나무로 한 번 더 고정하여 세월이 지나도 온전하 게 유지된다. 표구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한 곳이 바로 나무와 나무의 접합 부분이므로 세심하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시중에서 만들어진 액자에 비해 먼지와 습기에 강한 전문표구사의 마감기법이다.

 

요즘은 캘리그라피가 유행이라 캘리 작품을 들고 오는 손님도 있다. 손글씨의 매력을 남기고 싶은 사 람이 늘어 일거리는 조금 늘었다. 민화가 한창일 때 는 민화 표구를, 사업하는 사람들은 재물 복을 준다는 해바라기나 사과 그림 표구를, 호기롭게 달리는 말이나 호랑이 그림을 들고 와 일반적인 표구를 맡기는 고객 역시 늘었다. 

 

비단을 발라 고급스럽게 하는 표구는 보존기간이 늘어나 자연스레 귀한작품에 한다. 들인 값어치만 큼 믿고 안심해도 좋을 재료를 사용하여 그 가치를 한껏 높여 주는 것이다.

 

사근사근 친절한 말투와 설명에 표구 기초수업 속성을 들은 듯하다. 그 성격으로 온 집안 어른들이  친구들 간에 “우리 종갑이 어데 갔노, 갑이 못 봤 나” 하며 큰일이고 작은 일이고 찾는단다. 예순여섯 잔나비 띠 서른두 명 동기생들의 친목 모임에서도 만년 총무를 맡아 지금까지 소임 중이라니 얼핏 알 만한 일이다. 새 회장으로 바뀌어도 총무는 박종갑 연임을 조건으로 달고 위임받는다 하니 따라 웃을일이 아니다. 그만큼 신임이 두텁고 기본에 충실하 다는 삶의 태도가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았음이 분 명하다. 더욱이 아홉 살에 입학하여 동기들보다 한 살 더 먹었다. 내가 조금 더 속고, 내가 조금 더 양보 하고, 내가 조금 더 이해하면 다 편안하다는 이야기 를 자주 하는 동안 요즘은 서로 속으로 계산하고 겉 으로 셈하는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았다. 어느 쪽이 효율적이고 인간적이고 평화로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 맘 같은 사람들 이 어디 흔할까마는, 내 맘 같이 여겼던 관계에서 얼 마나 많이 상처 받고 실망하고 억울한 일들을 보고 듣고 겪었는가. 내가 늘 속고 양보하고 이해한다는말이 아직은 선뜻 어려운 문장이다. 그런 사이는 세 상에 부모뿐이다. 그 마음조차 표구로 남겨 벽에 같 이 걸고 싶은 심정이다. 

 

한창 때 몽블랑 선물점을 같이 운영했다. 근처에 학교가 몇 개 있어 학생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버스 정류장이 출입문과 가까워 손님이 늘 북적였다. 그 때 꽤 큰돈을 벌었다. 당시 신시가지 쪽의 너른 아파트를 한 채 분양 받았으나 어쩌다 입주도 못하고 다 날렸다. 

 

곡절 끝에 정신을 차리고서야 어느 날부터 항상 거울을 보며 “박종갑! 네가 최고다, 멋쟁이다” 웃으 며 열심히 살자며 어깨 펴고 큰 소리로 웃는 연습을 했다. 억지로 소리 내어 웃다 보니 어느 순간 거울이 없어도 자신감이 생겨나 밝아졌다. 지금은 작은 가 게에서 적게 벌어도 행복을 알게 되었다. 표구점 중 간 중간에 걸린 액자그림들처럼 소박하지만 친근한 삶이 되었다. 모작처럼 쉽고도 강렬한 삶이 있는가 하면 땀과 정성이 깃든 대작 같은 삶이 있기도 하고, 때로 소품같이 단정하고 아기자기한 삶도 있다. 침착하고 꼼꼼한 성격이 표구일과 잘 맞아 일하 는 데 만족감이 높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거의 일선에서 퇴직하고 이제 정기적으로 갈 곳이 없어 심심하다며, 아직 표구점에 출근하는 전문 기술직을 꽤 부러워한다. 그 많던 손님들도 숫자가 줄고, 표구점도 줄고, 수입 역시 따라 줄었으나 가끔 예술 작품을 만나는 희열로 사는 재미 또한 달리 있다. 궁하다고 행복이 줄어 들 수는 없는 일이다. 종이를 기본으로 하는 표구 일은 아직도 쉽지 않 은 일이다. 알맞은 천을 대는 일과 나무를 다루는 일, 풀을 바르는 일, 유리를 다루는 일, 배접하는 일 등등 작품에 맞게 안목을 정하는 일 또한 어렵다. 맡겨오는 작품들 못지않은 일이 표구일이다. 그래서 표구 또한 하나의 작품이다. 

 

글씨와 그림을 맡기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벌써 밖은 어두워졌다. 유화나 수채화 같은 거리 풍 경에 표구점 간판은 아직 어울리지 못했다. 눈에 잘 보이는 세련된 간판이나 불빛 찬란한 조명 없어도 빛나는 표구점이 아직 건재한 것은 한눈에 잘 보이 지 않는 작품의 뒤편에 공을 들여 살아가는 배후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뒷모습과 뒷마무리에 한층 유념해야 할 일이다.

 

 

강수완(시인)
2022-05-03 오후 3: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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