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창고

경북기록문화연구원

더불어 사는 삶의 힘
오늘의 기록은 내일의 역사

스토리 아카이브

홈으로 > 스토리 아카이브 > 기록창고
기록창고

청춘열일-고군분투 청춘들

  • 구자을(문화기획자)
  • 2021-08-26 오후 5:09:27
  • 141

 

고군분투 청춘들

 

지난 호 ‘어쩌다 사장’에서는 지역의 1인 청년 창업가에 대한 취재를 진행했었다.

일찍 명확한 꿈을 설정하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청년 창업가는 물론이고

직원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 보고자 한다.

 

252갤러리 임.경.지. 큐레이터 (33)

서문동로 252. 3층

시내에서 용상동으로 향하는 법흥교 바로 앞에는 흰색의 5층 건물이 있고, 그 3층에는 252 갤러리가 있다.

이 공간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를 만나 보았다.

 

 ▲ 임경지 큐레이터 (ⓒ구자을)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데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요즘에는 큐레이터 양성을 위한 특별한 교육과정의 학과가 있기도 하지만 저는 안동대학교에서 서양 미술을 전공을 했고, 4월부터 이곳에서 처음으로 큐레이터 업무를 배우면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미술은 언제부터 접하게 되셨나요?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을 선택해야 했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제일 마음에 들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그리다 보니 나름 재능도 발견하게 되어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미술학원을 다니다가, 이후에는 입시미술을 준비해서 안동대 미술학과에 진학하게 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보통 미술이나 예술은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역시 재능이 반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죠, 언제 재능이 있다고 느끼셨나요?

초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유치원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닌 짝꿍보다 옆에서 보면서 쉽게 따라 그리는 제 그림이 오히려 나은거예요, 하하. 그런 부분도 작용해서 방과 후 활동에 그림 수업을 선택하게 된 점 도 있어요. 물론 노력이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재능에는 기술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각적인 부분, 창의력과 같은 부분인 것 같아요.

 

감각적인 부분, 창의력이라고 한다면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인가요?

동일한 사물을 보더라도 다르게 보는 시각이 필요한데요, 색감과 같은 부분을 예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노력해서 갖출 수 있겠지만, 어떤 주제의식을 담기 위해 특정 색감으로 표현하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작가분의 특유의 재능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다른 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미대를 졸업하면 생계문제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졸업 후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시게 되셨나요?

학교 다닐 때는 막연히 졸업 후 작가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어요. 작가 분들은 수익이 많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고민하지 않고 대학을 다녔어요. 졸업 후 아동 미술학원에 취직을 했고, ‘일을 하면서 제 활동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미술을 가르치는 문제가 아닌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는 부분이 쉽지 않았어요. 이후에는 짧은 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공 공근로 파트타임으로 9개월간 일했었는데, 저를 담당했던 담당자 분께서 육아휴직을 하시면서 대체근무자로 10개월 정도 일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는 주변의 소개와 부모님의 권유로 은행 계약직을 1년간 했었구요. 직장에서의 업무도 쉽지 않았기에 작가로서 활동은 3년 동안 하지 못했어요. 은행 업무를 관둔 후에 한동안 아르바이트와 국내외 여행도 다니고 여유를 가지면서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차에 신시장의 청년몰에서 18년도부터 공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 그림 작업을 하면서 수강생도 모집하고, 그림엽서, 책갈피, 에코백 같은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고, 소품 사이즈 그림들을 그리고 취미인 뜨개질 소품도 만들어서 팔았어요. 그렇게 저만의 작업공간을 가진 것은 좋았지만, 온전히 제 작업에 집중할 수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공방이 잘 운영되진 못했어요. 조금씩 고민이 많아지던 중 갤러리 큐레이터 업무를 제의 받았고,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큐레이터는 주로 어떤 업무를 하는 건가요?

큐레이터의 가장 큰 역할은 작가를 섭외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예요. 하지만 저도 처음 큐레이터 일을 배우면서 세부적으로 할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전시 준비 단계에서 작가분들과 연락 및 계약서 작성, 전시 리스트 작성, 작품 전시 및 철수, 리플릿 및 현수막 제작 등의 디자인 작업들, 보도자료 작성, SNS 포함한 홍보활동, 갤러리의 이벤트 등도 준비해야 하고, 업무뿐 아니라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공부들도 필요하다보니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제 공방이라면 수익이 적더라도 제 속도에 맞춰 할 일을 조절해가며 일할 수 있는데, 큐레이터로 근무하면서는 정해진 전시 일정들이 있어서 그럴 수 없어요. 저는 느리게 작업하는 성격인데, 다양한 업무를 배우면서 처리해 나가야 하다 보니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은 큐레이터로서 업무를 배워나가고 있지만, 여력이 되는 만큼 제 작업을 해나가면서 내년에는 제 작품으로 이곳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이 일을 하면서 전시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좋은 작품들을 그려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요. 그리고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는 작업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저를 오롯이 작가로서 소개할 수 있는 순간을 위해 힘내려고 합니다.

 

30대. 개인적인 꿈과 생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나가는 시기다. 어쩌면 이번 코로나19 상황을 겪어나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더 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을 더 확실히 해 나가는 기회로 삼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계라는 부분에 타협하기보다 꿈을 잃지 않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방향으로 한 발씩 내딛어 나간다면 후회없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이번 인터뷰를 통해 훌륭한 작가로의 길을 이루어 나가는 작가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 그들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도 응원해 나가야겠다.

 

모던축산한우 김.성.일. 사장 (36)

경동로 851

안동에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한우갈비다. 안동 갈비골목에서 갈비를 시키면, 뼈가 달리지 않은 잘 손질된 갈비가 나오고, 갈비를 먹은 후에 뼈찜이 따로 나온다. 그런 한우갈비가 어떻게 준비되는지 궁금했었는데, 식당에 공급되는 한우갈비를 손질하는 식육점의 청년 사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인터뷰 당일 오후, 김성일 사장은 마침 한우갈비 식당에 납품할 물량이 있어 계속 작업을 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김성일 모던축산한우 사장 (ⓒ구자을)                

 

코로나 상황이지만 바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개업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납품하고 있는 갈빗집이 장사가 잘 되고 있어서, 그 덕에 저도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장소는 예전부터 수입 고기를 팔던 곳이었는데, 작 년 8월에 제가 인수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직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거죠.

 

이곳에 식육점을 개업하기 전까지의 과정도 궁금하네요.

제 고향은 예천이구요. 고등학교, 대학교를 안동에서 나오게 되면서 안동에 와서 지내게 되었어요. 공업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건축 쪽을 전공해서 대학교도 건축학과를 다녔는데, 사실은 학교생활보다는 중학교 때부터 취미로 비보이 댄스활동을 했었어요. 당시에 인기도 좋았죠. 제가 교통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었는데, 대학교 때 사고가 크게 났었어요. 사고가 난 이후로 학업도 포기를 하고, 좋아하던 댄스활 동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허비하면서 보냈었어요.

 

지금은 건강해 보이는데 크게 다치셨나봐요?

네. 특히 얼굴을 많이 다쳤었는데, 4번에 걸친 수술을 통해 현재 상태가 된 거예요. 그때는 정말 심하게 다친 상태였습니다. 그런 힘든 시간들은 어떻게 이겨냈나요? 학업도 포기하고, 모든 활동을 그만둔 상태에서 대인기피증도 걸리고 1년가량을 보냈었는데, 친구가 구미에 와서 병역특례 방위산업체라도 다니라고 조언을 해줬어요. 그래서 구미에서 전자제품 부품을 제작하는 방위산업체에서 5년을 다니면서 장비 관리 업무를 했었어요. 이후에 금형회사에 들어가서도 5년 정도 장비 관리파트 일을 했어요. 특히 금형회사에 들어갈 때는 사장님의 배려가 컸어요. 면접을 볼 때 제가 댄스활동과 공연도 병행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제안을 받아들여 주셔서 공연이 있을 때는 업무도 빼주고 하셨어요. 안동탈춤축제에서 공연도 하고 했죠. 물론 일 할 때는 맡은 업무를 열심히 했었어요. 나름 회사에서도 에이스였습니다. (웃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댄스활동도 열심히 하셨군요. 팀이 있었나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안동에 모던아트댄스학원이 있었는데, ‘아티스틱 크루’라는 팀원들과 함께 활동했 었어요. 당시에는 공연도 많이 했었어요. 16년도에는 대회 단체전에서 대상도 받았었고, 해외에도 나갔었어요. 아쉽게도 코로나19로 공연 활동도 중단되고, 해외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학원도 문을 닫고, 팀 활동도 없어졌어요. 학원이 운영된다고 해도 정기적인 공연이나 축제가 계속 있지 않으면 생계활동이 되진 못하거든요. 댄스 활동을 전문으로 할까도 생각은 했었지만 금전적인 부분도 있고, 나이도 있다 보니 공연이 있을 때만 참여하기로 하고 지속적인 활동 부분에서는 물러나게 되었어요. 젊은 팀원과는 나이차이도 10살 정도까지 나거든요. 그래도 지금도 하고 싶긴 해요.

 

지금도 아쉬움이 있을 것 같은데, 퇴근 후에 따로 연습도 하고 그러세요?

지금은 10시~11시에 일을 마치기도 하고 해서 딱히 연습을 하진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도 공연할 여건이 생긴다면 다시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 옆에 TV에서 나오는 것도 비보이 댄스 배틀 프로그램이거든요. 지금도 춤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순 없긴 해요.

 

그러고 보니 지금 상호인 모던축산한우의 모던이 모던 아트댄스학원에서 이어진 거죠? 이후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네. 맞아요. 직장을 그만두고 댄스활동이랑 공연을 이어 나가다가 명절 대목에 이렇게 고기를 부위별로 나누어 인터넷 판매하는 업체에 아르바이트를 갔었어요. 그때 사장님께서 일 잘한다고 계속 함께하자고 하셔서 1년 반 정도 고기작업을 배웠어요. 그만 둔 이후 고기도 직접 관리할 수도 있고 해서 고기집을 열고 싶긴 했는데, 고깃집을 열 정도 여유가 되진 못해서 작업장을 운영해야겠다고 정했어요. 처음에는 다른 작업장을 빌려서 작업하기도 하고, 다른 가게에서 하기도 했는데, 눈치도 보이고 해서 작업장을 차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다가 이곳 점포가 나왔고, 납품하던 식당 사장님께서 작업하면서 갚아나가는 조건으로 도와주셔서 이렇게 개업해서 일하게되 었습니다.

 

향후 목표가 있다면요?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댄스활동이나 공연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제 고깃집을 차리고 싶어요. 식당을 하고 싶어서 옥동 갈빗집에서 8개월 정도 일을 배우기도 했었거든요. 제가 고기를 잘 관리를 할 수 있고, 손님들께도 맛있는 고기를 제공하고 싶어요. 저도 맛있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고(웃음), 친구들도 초대해서 함께 먹구요. 종종 고기 먹고 싶을 때, 친구들 불러서 먹거든요. “힘들지? 고기먹자.”, “우린 먹어야 돼.” 솔직히 저희 나이 때 소고기 사먹기 힘들 거든요. 그래서 가까운 목표는 제 식당을 차려서 친구들과 같이 고기도 구워먹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 제 고깃집을 차리고 싶어요. 저도 맛있는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고, 친구들도 초대해서 함께 먹구요.

 

인터뷰는 시종일관 밝은 에너지와 즐거운 기분으로 이어졌다. 생활하는 내내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삶이 이어져온 것은 이런 밝은 에너지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꿈을 꾸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괜한 걱정을 그만두고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꿈도 함께 이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핸즈커피 김.종.렬. 사장 (36)

남문로 35. 2층

코로나19 발생한 지도 2년째로 접어들었다. 분수대 주변, 시청과 시내를 분주하게 오가는 차들도 뜸해질 어두운 밤 10시쯤이면, 환하게 불을 밝힌 카페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늦은 시간에도 손님들의 잡담 소리를 들으며 분주히 커피를 내리던 때가 언제였을까, 손님을 비추던 매장 내 조명은 테이블만 비추고, 몇 명 되지 않는 매장 내 손님과 배달 주문을 홀로 받고있는 청년 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 김종렬 핸즈커피 사장 (ⓒ구자을)           

            

서른여섯이면, 상당히 젊은 나이에 사장님이 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카페를 운영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부모님께서 마련해 주셨거나 그런 건가요? (웃음)

그랬으면 좋겠지만(웃음), 저도 직장생활 하다가, 퇴직금과 대출을 통해 시작했습니다.

 

그럼, 어떤 직업을 거쳐서 카페 운영까지 하시게 되었나요?

저는 안동대 건축학과를 나왔어요. 졸업 후에는 인테리어 회사에 좀 다녔었는데, 저랑은 맞지 않았어요. 그만둔 후 직장을 찾다가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에 채용공고가 나서 취직을 하게 되었죠. 연수팀의 기획실에서 교육준비 및 진행업무를 맡았는데, 처음에는 안정된 직장이라 좋았었지만, 봄이 되면 기관이나 학교에서 수련원 교육 오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주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었어요. 봄이 없어져 버린 거죠. 쓰지 못한 연차를 수당으로 받는다곤 하지만, 봄 시즌에는 제대로 쉬지를 못했어요. 여유없이 일만 하다 보니, 젊은 시절의 인생을 허비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봄을 찾아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저는 커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고, 제 입맛에 맞는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기도 하면서 카페 창업을 고민하던 차에 단골이었던 핸즈커피 사장님께서 가게를 넘기신다고 하셔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후 제가 넘겨받게 되었어요.

 

그렇게 봄을 찾으셨나요?

이제 3년 정도 되었는데, 이제 저녁이 생기긴 했어요. 그리고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자 월요일은 휴무로 정해서 쉬고 있지만, 아직은 봄을 찾았다고 체감하기 보다는 계속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손님으로 카페를 다닐 때 생각했던 카페 점주는 아침에 출근해서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여유 있는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초기에는 직원을 고용할 입장도 되지 않았기에 힘들게 일했어요. 손님이 오시면 주문을 받은 후 준비를 하고, 비는 시간에는 재료 체크를 하고, 청소도 하면서 쉴 시간이 없더라구요. 그러다가 1년 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더 힘들어졌어요. 망하나 싶었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전 직장(선비문화수련원)에서 찾아가는 교육수업을 위한 교재 및 교구 배달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주셨어요. 그래서 배달을 위한 사업자를 낸 후 교재 및 교구 배달 업무를 병행하면서 버텨낼 수 있었어요.

 

투 잡을 하시게 된 거네요?

네. 많은 카페나 음식점들이 큰 타격을 받았었는 데, 저는 이전 직장에서 배려해 주셔서 이렇게라도 버틸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인 셈이죠.

 

제가 이곳을 들리면서 종종 손님들께 주문받은 음료를 직접 가져다 주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데,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도 투 잡을 하시면서도 카페를 계속 운영하시려는 특별함이 있을까요?

사람들을 대하고 그분들께 맛있는 음료나 디저트를 대접하는 일이 즐거워요. 단순히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이라면 집에서 혼자서도 즐길 수 있잖아요. 회사에서는 한정된 사람과 만나며 업무에 매진하는데, 카페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정감이 가는 단골손님들이 생겨나고, 그 분들께 맛있는 음료나 디저트를 대접해 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손님으로 카페들을 방문할 때, 여유가 있는데도 기계적으로 주 문을 받고 진동 벨을 건네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카페를 운영한다면 손님들께 더 따뜻하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마음을 반영해서 앞으로 더 멋진 카페를 운영하기 위한 계획이 있을까요?

프랜차이즈가 아닌 독립된 저만의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프랜차이즈다 보니까 제 마음대로 운영 할 수 없거든요. 지금도 카페 사장이긴 하지만 손님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좀 더 저렴하게 판매를 한다거나, 이벤트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보니, 저만의 카페를 운영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본사에서 내려온 종류의 음료와 디저트가 아니라 제가 고른 커피와 음료, 직접 만든 빵도 만들어서 손님들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1년 이상 지속된 코로나19로 모든 국민들에게 피로감이 쌓여가고, 특히 더 힘든 분들은 상점주일 것이다. 많은 상점들이 폐업하게 되고, 자연히 우리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들도 하나둘 사라져 간다. 코로나 여파 뿐 아니라 기술이 발달하고 살기 좋아졌다지만, 우리가 마음을 둘 수 있는 편안한 공간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따뜻하게 대해 주는 마음이 전해지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무더워진 여름저녁, 카페에 들러 여유 있게 야경을 감상하며 따뜻한 마음이 담긴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하는 것은 어떨까?

구자을(문화기획자)
2021-08-26 오후 5:09:27
210.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