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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 더 오래된 이야기 ⑤-대진철공소

  • 강수완(시인)
  • 2021-05-26 오후 4:54:57
  • 422

“세상에 못 쓰는 건 오로지 사람뿐이요”

대진철공소

 

그 철공소 앞 큰 도로를 지날 때 자주 생각했다.

간판이 허름하여서가 아니라 오래된 간판을 그대로 두고 생업에 열중인 주인이 궁금했다.

 

  ▲대진철공소와 주인(ⓒ강수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로 바깥 풍경들.

기와를 얹은 옛 집들은 이제 고택으로만 남다시피 한 세월이 되고 보니 금세 새로 지은 건물들이 들어서거나 바뀌는 요즘, 저런 당당하고 소박한 간판으로 직업을 이어가고 있는 주인은 어떤 생각일까? 변화를 무시하거나, 둔감하거나, 오롯이 한길을 가거나, 아무튼 간판 하나로 가늠해보는 오래된 가게 주인들의 성향에 호기심과 경외감이 동시에 일었다.

 

특수용접 출장수리 대진철공소.

 

흰 바탕의 푸른 글씨는 세월에 바래 획과 획 사이에 아름다운 균열이 생겨 얼핏 보면 강이 흐르다가 지류로 바뀌어 흐르는 냇물 같았다. 세 자리로 바뀐 지 한참인 전화 국번은 아직도 두 자리를 쓰고 숫자 앞에 붉은 전화기 표시가 꼿꼿했다. 간판 아래로 검은 입구가 아득하게 사람을 끌어 들였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아니 비었다. 벽이며 천정에서 오래 된 흔적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녹슨 쇠붙이와 금방 자른 쇠붙이들이 무더기 지어 나란했다. 네모난 쇠파이프는 긴 몸을 서로 기대어 식구처럼 붙어살았다. 어딘가 한두 번 쓸모를 한 파이프 조각은 또 저희끼리 붙어 앉아 도란거렸다. 구멍 뚫린 네모들 사이로 바깥의 봄 햇살이 새 둥지처럼 들었다. 쇠의 잘린 조각과 쇳밥이 남아 있는 바닥은 쇳가루와 먼지로 얌전했다. 쇠가 깎이고 밀려 도르르 말린 나선형의 쇳조각에도 아낌없이 봄이 스미어 반짝였다. 연필을 깎아 놓은 듯 쇠도 연하게 제 몸을 말아 주는 걸 처음 알았다.

 

전화를 받는 주인의 목소리가 밝았다. 찾아온 취지를 밝히자 다소 민망해 하는 티가 역력했다. 뭐 대단한 거라고 거를 다 오니껴, 투박했지만 웃는 소리가 다정했다. 잠깐 볼일 보러 나왔는데 곧 도착하겠노라 했다. 대낮에 사업장 출입문을 다 열어놓고 외출하는 걸 보니 세상을 믿을 만큼 살아온 나이가 좀 가늠되었는데 목소리는 활기차 짐작이 어려웠다. 편견에 빠지는 습관에 머리를 흔들며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갖가지 도구들이며 연장이 벽에 걸려 있다. 무질서의 공간처럼 보이나 살펴보니 실상은 주인만의 어떤 질서와 순서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길이와 용도를 고려한 진열감이 그곳에 있었다. 이는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나름대로 가늠해보는 일종의 첫 느낌 같은 것이어서 재미가 있다. 작업대 위 날개 푸른 오래된 선풍기가 나팔꽃처럼 활짝 펴 있다. 세월이 흐른 흔적이 역력한 상표와 모양에 조심스레 선풍기를 트니 바람이 짱짱했다. 낡았으나 고장 나지 않으면 버리지 않으니 이 대로변에 저 간판을 달고 오래 있어도 아무렇지 않는구나, 거창한 신념이 따로 없어도 한 곳에 오래 붙박여 있으면 단단해지는구나, 혼자 생각하며 기다리는 동안 편안해졌다.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주인은 전화 목소리 보다는 훨씬 나이 든 편이었다. 무엇보다 그 나이대의 안동 양반치고 매우 자상했다. 경상도 어른은 상냥하기가 수월치 않은 지 말을 붙여 보면 대개 중간에서 잘 끊기는데 몇 번 주고받는 말씨가 곱고 부드러워 적잖이 맘이 놓였다. 잘 웃고, 잘 받아 넘기고, 잘 이어주어, 묻고 대답하는 일이 수월했다. 사모님께서 살기가 편하셨겠어요 물으니 대답이 또한 버들잎 같다.

“그래 비니껴? 글타면 만무 다행이씨더.”

간판 이야기를 먼저 했다. 30년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큰 대 자, 길 진 자, 그 당시 친구가 정성스럽게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간판으로 올렸다고 했다. 오래도록 하라는 뜻이 담겨진 친구의 바램대로 지금껏 하고 있으니 좋은 거 아이껴, 호탕하게 웃었다. 크게 번성하진 못했어도 처자식 벌어 먹여 공부 시켜 내보내고 집 한 칸 장만하여 마음 편히 사니 만족한다는 말에 진심이 어렸다.

 

안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그 시절 누구나 비슷하게 살았듯이 형제는 많고 살림은 없는 집안에서 크게 못 배우고 시작한 일이 철공소였다. 과거 조그마한 회사 생활을 잠깐 하기는 했었으나 기술을 배워야 오래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일찍 자립을 꿈꾸었다. 기술이라면 일본이 유망했던 시절이라 1년 간 과감히 기술을 배우러 혼자 당차게 일본으로 갔다. 소규모 자립을 위하여 배우고 익힌 기술로 돌아와 안동중학교 앞에 철공소를 차려 돈을 벌었다. 얼마 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와 한 길만 우직하게 걸었다. 한때는 직원을 두고 성황을 이루기도 하였으나 나이 들면서부터 점차 직원 없이 혼자 일하며, 일손이 더 필요할 때면 외부 인력을 고용해 당일 바로바로 비용을 지불하며 운영하는 일이 수월해졌다.

 

열손재배하며 놀면 뭐하냐 싶어 아직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이 천생에 꼭 맞고 재미있다고 했다. 쇠를 깎는 기계 아래 놓인 나무 받침 작업대에 알알이 구멍 지는 세월 동안 손에 익은 일에 정년이 있을까 싶었다. 작업받침대로 쓰던 나무토막도 세월에 따라 물기가 다 빠져 두부처럼 가벼워져 있었다. 모르긴 해도 저 나무토막 또한 족히 10년 세월은 이곳에서 늙었으리라 짐작했다.

 

30여 년 세월을 한꺼번에 묻는 일이 조심스러워 우선 한 직업을 한곳에서 오래한 배경을 물었다. 단순한 물음에 다소 철학적인 대답을 기다리던 속내를 나무라듯 경쾌하고 사실적인 말이 돌아왔다. 살면서 직업 한 두 가지 바꾸는 사람들도 숱하지만 그 사람들이야 각자 사정이 있는 거고, 눈 뜨면 열심히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니 직업 하나 바꾸는 것도 힘들다며 껄껄 웃었다. 알고 바꾸면 그나마 성공하겠지만 바꾸는 직업의 내막을 모르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있는 밑천 까먹거나 날리고 살기 힘들어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한 길을 걸어 온 사연을 이야기했다. 한 길을 간다는 것은 하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배운 그 일로 일만 하며 살아온 거라, 한 생애가 낡은 간판에 연연해하지 않는 바탕이 되었으리라.

 

얼굴 미간에 점이 있어 복점인가 물어봤더니 날 때부터 있던 사마귀가 부끄러워 해코지 했더니 점으로 변해 자리 잡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점이 더 커져 어느 때 부터인가 점 때문에 살기 좋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갸우뚱했더니 허허 웃으며, 그 점 때문에 사람들 눈에 쉽게 띄어 도통 나쁜 짓을 못하니 좋은 거 아니요 했다. 저런 밝은 면이 철공소 검은 벽면을 환하게 비추어 평생 쇠 만지는 일에 전념했을까 생각했다. 오래된 상표가 선명한 선풍기와 벽에 걸린 선풍기의 용도가 서로 다르게 작업에 쓰이듯, 사람들 일에도 각자의 쓰임이 따로 있어 먹고 사는 일이 서로 겹치지 않게 사는가 싶다.

 

(ⓒ강수완) 

 

장갑 이야기가 나오자 덥석 일하던 장갑을 들고 왔다. 눈여겨보지 않았더니 목장갑은 두 켤레씩 겹쳐져 있다. 뜨거운 쇠나 날카로운 걸 만지느라 겹쳐 꼈나 싶었더니 대답이 단순했다. 일하다가 구멍 난 장갑도 아까워 새장갑 안에 끼고 일하는 버릇이 있어서 아끼는 습관이 굳어진 거라 했다. 돈으로 따지면 장갑 한 켤레에 얼마 안하는 액수이지만 멀쩡한데 한 번 끼고 버리는 걸 보면 아까운 마음에 얼른 주워 놓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새 장갑 보다 쓰던 장갑이 훨씬 많았다.

 

백 고무신 한 켤레 살 돈이 없어 검정 고무신만 주구장창 신고 학교 다니던 시절 생각이 나서 무얼 쉽게 못 버린다고 했다. 어쩌다 한 켤레 사 신은 고무신이 닳을까봐 아까워서 손에 들고 다니던 때, 바로 위 세 살 많은 형이 만날 업고 다녔다는 일이 지금도 고마워 그 형님께 잘

한다고 했다. 책가방이 없어 책보에 책을 싸 학교에 다니던 옛날 일이 아직도 눈에 그렁그렁했다. 특히 눈이 녹을 때쯤은 발이 몹시 시려 팔짝팔짝 뛰며 걸었다 했다. 고무신에 구멍이라도 나거나 찢어지면 그걸 들고 땜질방에 가서 다른 고무 쪼가리로 때워 와 또 신었다 하니 학교까지 걸어 다니던 10리 길은 멀고도 멀었다 했다.

 

일로 굳어진 손가락에 단단한 삶의 기운이 있어 지금은 이 공장의 주인이 되었으니, 성실하게 살면 끝이 보인다는 여유가 보였다.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찍는다고 작업대 위 장갑을 옮겨 놓았더니 그걸 단박에 제자리로 갖다 놓는 걸 보고 속으로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쓰던 물건은 늘 제 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철칙이 있다 했다. 검고 먼지 나고 낡은 것들뿐인 줄 알았다간 큰 코 다친다. 이런 사람들이 고수다. 이런 사람들이 눈에 띄어야 하는데 묻히기 쉽다. 일 바쁠 때 빨리 찾아 시간 낭비를 줄인다니 올해 초에서야 핸드폰 전화 앞자리를 이동했다는 말과 묘하게 어울렸다. 자랑처럼 보여 주는 명함에 010이 선명하였다. 어수선한 듯 보이지만 나름의 경영 방식이 있는 가게를 꾸려 온 사람들의 특징 중 한 가지였다. 고집과 신념은 그 차이가 애매하기도 하지만 때로 극명하기에 기준을 어디에 맞출지가 관건이었다.

 

(ⓒ강수완)  

 

쇠는 비 맞으면 녹이 나 못 쓴다 했다. 그러니 비 안 맞는 자리에서 솜씨 좋으면 밥 굶을 일 없으니 이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 왔노라 했다. 지금 안동에 있는 철공소는 대략 2~30여 업체인데, 그 중 주문전화 받고 일하는 건 대진철공소의 몫이라 했다. 각 가게마다 전문 주력 분야가 각자인데 큰 기계 들여놓고 선반 깎는 작업들은 좀 더 규모가 큰 업체가 하고 맞춤형 제작이나 남이 하지 않는 물건 위주로 제작한다 하니 더욱 특별해 보였다. 주로 구조물 위주의 작업이 많은데 소규모의 용접이 필요한 철문이나 판넬 건축물 중 적은 덩어리가 주문으로 들어오면 일을 시작한다 했다. 주문자가 직접 사이즈를 재어 요구하거나, 사진 등으로 주문하면 그대로 만든다고 했다. 맞춤제작이 손에 익어 어지간하면 거의 막힘없이 만들기도 하고, 꼼꼼하고 확실한성격으로 일을 해 주다보니 소문이 나서 여태 일감이 끊겨 걱정한 적은 드물다 했다.

 

소소한 제작으로 아침 7시에 문을 열면 해 빠지는 시간까지 일 하는데, 더러 바쁜 일이 있으면 늦게까지도 일을 하긴 하는데 되도록 집에 일찍 들어 가 아파트 아래윗집에 사는 손주들 재롱을 본다 했다. 보통 하루 10시간 정도는 아직 밖에 있다 하니 그 성실함에 짐짓 놀라기도 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요령 따위 없는 직업이라 큰돈이 안 되어도 찾는 사람들 때문에 일정한 시간에 문을 연다니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거나 성과가 나는 일은 드물다는 생각을 했다. 적다고 함부로 문 닫을 일인가. 크다고 계속 잘 나간다는 일인가. 이치는 자명하다. 돈 된다고 달려들어 하는 일이나 돈 덜 된다고 않는 일이나 한 평생의 가치는 별반 차이가 없다 했다. 누구와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사느냐 못 사느냐의 일에 직업의 필요성을 두라고 하니, 아뿔싸. 세상사 스승은 도처에 널렸고 그 스승은 꼭 책이나 강의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철공소 검은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월의 더께와 바닥에 엎드린 쇳가루나 주인의 이마 위 깊은 주름이나 구멍 난 목장갑에서나 칠 벗겨진 간판에서나 배우고 느낄 일은 많고 많다. 무심히 보고 지나치거나, 유심히 머물러 속내를 살펴보아야 세상사 깊이와 넓이를 비로소 가늠할 수 있다.

 

자르고 남은 쇠 동가리 하나도 모아 놓아야 새 파이프를 자르는 무모함이 없으니, 남들 보기에 어설프고 허름하여도 고물상에 안 보내고 있는 것이라며, 세상에 못 쓰는 건 오로지 사람뿐이라 했다. 그 말에 뼈가 있다. 못 쓰는 사람이 많은 세상, 사람답게 사는 일 한 가지 또 배우고 있다. 대진철공소 낡은 간판 아래에서.

강수완(시인)
2021-05-26 오후 4: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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