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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풍경②-임하댐에 잠긴 세월

  • 김복영(사진작가)
  • 2020-12-07 오전 11: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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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바들 87년 6월 13일 ⓒ김복영

 

손자를 업고 넋 나간 듯
임동장터 위로 치솟는 다릿발을 바라보고 있는 돈바들 배씨 노인.
머잖아 댐이 완공 되면 장터도 돈바들도 물속에 잠길 텐데
배 노인네 조손은 어디로 가려는가?


30여 년 전 임하댐 수몰예정지에서 촬영한 이 사진들을 보면서 세월보다 더 빨리 변해버린 우리네 삶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그때만 해도 이 지역 농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생활 모습이지만 지금은 어른들에게는 아스라한 추억으로 가슴속에 남고, 아이들에게는 옛 기록 속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는 격세지감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지례 점방 87년 4월 9일 ⓒ김복영

 

▲무실 뒤간 89년 2월 12일 ⓒ김복영

 

담장에 덧대 지은 뒷간에서 혹 골목길로 지나가는 남의 흉을 듣게 되는 난처한 경험도, 생필품 공급은 물론 공·사무를 포함하여 마을의 온갖 정보가 유통되던 점방집의 따뜻한 아랫목도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내걸음 때는 물론 집에서나 들에서나 한복이 더 편하게 몸에 익은 세대와, 동네 우물가나 도랑가 빨래터에서 퍼져나간 소문 때문에 울고 웃던 부녀자들이 살아가던, 그때와 함께.
 

▲박실 빨래터 86년 3월 16일 ⓒ김복영

  

 ▲사의 우물가 87년 5월 8일 ⓒ김복영

 

▲무실 신분형 할머니 89년 1월 16일 ⓒ김복영

 

가사를 짓고 베끼고 낭독하는 것은 반촌 부녀자들의 일상 중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었다. 집안일과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틈을 내어 가사를 모으고 읽는 일은 결코 소흘이 할 수 없는 그들 삶의 일부였다. 한겨울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햇볕이 따스한 담장 밑에 나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사향가를 읽고 있는 이 할머니는 합강에서 열여덟 살에 무실로 시집온 신분형 할머니다. 그때 일흔세 살이라던 그이가 물을 피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그이의 이삿짐 귀중품 속에는 가사 두루마리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실 체장수 83년 3월 16일 ⓒ김복영

 

그때만 해도 양 어깨에 체를 잔뜩 걸머멘 체장수가 골목을 돌며 목청을 돋우고, 주기적으로 건어물 장수도 들리곤 했었다. 참 옛일 같다.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체는 거칠고 성근 얼게미부터 고춧가루 콩가루를 치던 체, 술 거르고 간장 거르는 촘촘하고 고운 체까지 서로 다른 크기로 용도에 따라 몇 개씩은 있어야 되는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당시 농촌에서는 현금보다는 현물인 곡식류로 물물교환이 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행상들의 짐무게는 갈수록 늘어나게 마련이었다. 이 체장수도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에 걸린 체 숫자에 반비례해 머리에 인 곡식 자루의 부피가 늘어날 것이다.
 

▲중평 86년 11월 9일 ⓒ김복영

 

입담배를 생산하던 농가는 칠팔월이 가장 힘든 때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담배밭골을 오가며 진액이 끈적거리는 담뱃잎을 따 모으는 일부터 따온 잎담배를 엮고 말리고 선별하는 일까지, 일손이 많이 필요한 농사이면서 더위가 한창인 이 시기에 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맞춰 해야 되는 농사일이란 게 대체로 이웃 간 품앗이와 두레로 이루어지지만 특히 잎담배 생산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보니 으레 이웃들의 손이 다 동원되는 두렛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맛재 87년 8월 9일 ⓒ김복영

 

이날도 임동면 맛재의 어느 농가에서 건조실 한 굴 담배 다는 일을 끝내고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온 이웃이 마당가에 둘러앉아 돼지고기 파티를 하는 모습이다.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땀 젖은 셔츠 사이로 서늘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이웃들과 나누는 막걸리 한 잔 돼지고기 한 점에서 농촌의 행복감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야외 불고기판 대용으로 너도나도 슬레이트 조각을 들고 나오던 시절이었다.
 
* 본 글은 『기록창고』 6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김복영(사진작가)
2020-12-07 오전 11: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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