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창고

경북기록문화연구원

더불어 사는 삶의 힘
오늘의 기록은 내일의 역사

스토리 아카이브

홈으로 > 스토리 아카이브 > 기록창고
기록창고

발굴, 아카이브②-석주 이상룡 선생 일가의《가족단명첩》

  • 황성현(경북기록문화연구원교육홍보간사)
  • 2020-09-01 오전 11:09:10
  • 2,419
  • 메일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은 2018년 안동댐 수몰마을 1차년도 기록화사업을 진행하였다. 수몰된 지 43년이 흐른 현재, 마을 주민들의 고령화와 함께 마을에 대한 기록과 생활문화사적 스토리와 자료가 망실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담 및 구술 채록 파일 80여개, 사진 스캔 1,500여점, 마을 앨범 및 수몰보상조사대장 등 의미 있는 기록물을 수집하였다.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과 반성을 남기며, 지역과 수몰민 삶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이자 위로가 되길 바란다.

오랜 시간 단절되었던 기억과 기록을 복원하여 오늘날의 텍스트로 만듦에 있어 무엇을 담아내고 기록화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 40여년 전 파편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던 생각들은 개인이 느끼고 생활한 환경에 따라 모두 달랐다. 제보자도 사람이기에 마을에 대한 기억을 과장하거나 축소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 조사자는 늘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여러 사람의 기억과 증언을 종합하였음에도 당사자가 아닌 경우 정확하지 않은 정보도 존재했다. 이러한 점은 본 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계속 점검 해나가야 할 과제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 속에서 발견한 자료들 중 특별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랜 세월 속에 묻혀있던 자료 고성이씨 가족 단명첩이 그것이다.

▲ 가족단명첩(고성이씨 이종기 옹 제공)

 

가족단명첩은 1910년에 석주 이상룡 선생을 중심으로 고성 이씨 가족단을 결성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간 석주 선생 유고(遺稿)와 아들인 동구 이준형 선생 문집에서 언급된 적은 있으나 실제 존재가 드러난 것은 최초다. 명첩표지 오른쪽에는 무오(戊午) 11월 20일 이라는 글자와 1910년 경술(庚戌) 5월 시작이라고 적혀있다.

 

▲ 이상룡 선생의 가족단취지서(좌) / 가족단취지서에 대한 아들 이준형의 글(우)

 

첫 장에는 당시 석주 선생의 이름인 이상희가 단장으로 올라가 있고 이상동, 이봉희 등과 탑동 종손과 평지파 종손 등 일가 집안대표 66명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석주 선생이 직접 쓴 가족단취지서와 아들인 이준형 선생의 글이 실려 있다. 취지서의 내용은 석주 선생이 만주로 떠나며 종손 부재시 가족 운영을 당부하는 말,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은 시기 가문과 문중 사람의 삶을 당부하는 말이 실려 있다.

 

 

▲ 안동댐 수몰을 앞두고 임청각 관련 유물을 고려대에 기증 후 4.18기념탑 앞에 선 허은 여사 일가와 문중 사람들.

(ⓒ경북기록문화연구원)  

 

가족단을 결성한 다음해인 1911년 석주 선생은 일가를 이끌고 만주로 향한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일가 중 상당수가 만주로 건너가거나 독립운동에 참가 했다. 안동에 남은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거나 지원 활동을 하며 문중을 지켰다. 이후, 아들 이준형 선생과 손부 허은 여사 일가가 귀국한 뒤 도곡동에 들어와 살다가 1939년에 가족단을 해체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단명첩>의 내용은 독립운동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며 향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다.

 

* 본 글은 『기록창고』 2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황성현(경북기록문화연구원교육홍보간사)
2020-09-01 오전 11:09:10
1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