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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아카이브①-권정생 선생의 미발표 친필 시

  • 황성현(경북기록문화연구원교육홍보간사)
  • 2020-08-27 오후 3: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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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갱지에 작성된 권정생 선생의 친필 시(ⓒ이준동)

 

《강아지똥》 , 《몽실언니》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권정생 선생의 귀천 11주기를 맞았다. 2018년 5월에는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주최한 '권정생 선생 귀천 11주기 추모의 정' 행사를 가졌다. 권정생 사후 그의 문학과 삶의 기록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재단에서는 그의 정신을 받들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8년 6월,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이하 연구원)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하 재단)은 권정생 선생의 미발표 시가 존재한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에 들어갔다. 미발표 시는 기관이 아닌 개인의 자택에서 발견되었는데 어떻게 개인의 자택에서 미발표된 시가 온전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 시를 보관한 이준동 씨와 권정생 선생 간의 특별한 인연 덕분에 가능했다.

이준동 씨와 권정생 선생과의 첫 인연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이준동 씨는 대구 계성고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당시 권정생 선생도 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다. 선생의 눈엔 안동을 떠나 타지에서 유학을 하던 그가 안쓰러웠던지 눈길 한 번이라도 더 주고 관심을 가져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까워진 후, 이준동 씨는 방학 때 권정생 선생 자택에서 숙식을 하기도 하며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도 하게 된다. 그렇게 맺은 인연은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 안동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어진다.

 

1968년 권정생 선생(당시 32세)은 대구에서 안동으로 올라와 일직교회에서 지내게 된다. 그는 교회 문간방에서 생활하며 종 지기 일을 한다. 이 시기 이준동 씨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으로 오게 된다. 권정생 선생이 일직교회에서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이준동 씨는 교회로 몇 번 찾아가게 되고 일손을 도와주기도 한다. 1975년부터는 일직교회 청년회 총무로 활동하게 되고 교회의 운영과 살림에 힘을 쓰기도 하였다. 이 무렵 일직교회 소식지 《소금》 이 발간된다. 《소금》 은 1집부터 3집까지 발간되었으며 1~2집은 유인물 형태로, 3집은 회지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1~2집은 현재 남아있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으며, 3집은 현재까지 유일본 1권이 이준동 씨 자택에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3집 이후로는 발간이 중단되었다.

발굴된 《소금》 3집의 주요 내용으로는 권정생 집사 권두시, 전도 사 설교, 교인들의 간증·수필·일기·기도문 등 삶의 생활 기록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소식지에 실린 권두시는 미 발표 작으로 추정되는 시 <해> 이다. 재단에 따르면 <해> 는 지금까지 어느 시집에도 등재되지 않은 시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테두리 부분에 시 내용의 일부가 네 방향으로 적혀있는 점이다. 또한 소식지에 실린 <해> 와 별개로 갱지에 작성된 친필 <해> 가 남아있다. 오탈자와 편집교정 사항을 그대로 둔 것 등을 볼 때 소식지에 싣기 전 초안용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교회 소식지에 까지 실린 시가 현재 권정생의 다른 시집에는 찾아 볼 수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향후 추가적인 연구가 있어야겠다.

 

▲ 일직교회 소식지《소금》 3집 표지(ⓒ이준동)

 

▲ 일직교회 소식지《소금》 3집 목차(ⓒ이준동)

 

소식지 말미에는 권정생의 단편동화(호박덩굴, 고추짱아, 뚜꺼비, 해바라기)가 실려 있고 앙케이트 형식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장에는 이준동 씨의 편집후기와 1975년 5월5일 편집, 6월8일 발행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준동 씨는 당시 작업상황을 회고하며 “분량이 90페이지 정도 되는데 요즘 같이 출판 기술이 발달한 게 아니라 그걸 일일이 철필로 써서 등사기로 직접 밀어야 했어요. 작업하는데 1주일 넘게 걸렸던가, 30~40장 이상 넘어가다 보면 용지가 밀려올라오고...” 밤을 새가며 소식지를 만들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 소식지에 실린 <해>(ⓒ이준동)


이 날 추가로 발굴된 자료로는 민들레 소식지(81년 6월30일 제3호 발행)와 문집 2편이 있다. 당시 우편으로 돌렸던 민들레 소식지는 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이사인 김영동 씨가 발행인으로 참여했다. 문집 2편 《사과나무밭 달님》 , 《꽃님과 아기양들》 에는 '이준동 선생님께 권정생 드림 1975. 3. 8' 이라는 권정생 선생의 친필 사인이 쓰여있다. 연구원과 재단 관계자는 이준동 씨가 40여년 넘게 《소금》 3집과 여러 자료들을 잘 보관해온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향후 권정생 선생과 관련된 추가 자료 발굴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 왼쪽부터 이준동씨, 황성현 경북기록문화연구원 교육홍보간사, 유경상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김석현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경북기록문화연구원)

 

* 본 글은 『기록창고』 1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황성현(경북기록문화연구원교육홍보간사)
2020-08-27 오후 3: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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