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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의 어머니!

  • 이현수(보건교사)
  • 2022-05-03 오후 2:33:27
  • 919

고리짝 소중한 옷 상할세라 버릴세라 궁궁이 한 잎 넣어 향기를 덧씌우고 신문지 깔아 넣어 높은 곳에 올려두고 다시 꺼내 펼쳐보고 거풍시켜 넣어두네

길쌈한 명주 옷감 똑 닮은 명주솜 끊어진 실 이어주고 쓰임 될까 못 버리고 헝겊 보 구석구석 깊은 곳에 자리하니 자투리 삼베 무명 지금도 친구 먹네.

머리칼 스친 바늘 녹슬세라 잃을세라 머리카락 뭉쳐 넣은 바늘꽂이 꽂아두네 사진 속 삼동서 그곳에 걸어두니 언제 봐도 좋을시구, 어머니 삶 응원하네

본떠 만든 무명 버선 지금도 들어갈까 발끝 세워 넣어보니 어김없이 들어가네 뾰족하고 어여쁜 코 예전 모습 그대로라 함박웃음 터져 나와 소녀 같이 웃으시네

처녀시절 꿈이 담긴 수놓인 횃댓보 이제는 역할 다해 이불보로 숨어있네 어머니 손, 요술 손, 마디 굵은 요술 손 무엇 하나 안 버리고 알뜰살뜰 만드시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안동에서 나고 자란 1943년생 나의 시어머니 권순희 씨는 시집올 때 가지고 와서 사용해왔던 낡은 옛 물건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반세기 이상 시간이 흐른 자수와 천, 그 당시 쓰던 옛날 물건들의 이름을 알려주며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풀어내 주셨다.

 

▲신문지에 궁궁이 한 잎 말아 넣어 둔 고리짝 ⓒ이현수

 

어머니의 방안을 들어서면 가족들의 빛바랜 기념 사진이 담긴 액자가 즐비하게 벽면을 채우고 있고 더 안쪽 작은 방안에는 각종 오래된 물건들이 자리 하고 있다. 한복을 넣어둔 고리짝, 발틀을 손틀로 개 조한 재봉틀, 천 조각들을 넣어두는 조각보, 실 꾸 러미, 반짇고리, 다듬이 돌, 박 바가지 등이다. 어머 니 방 물건들 중 나는 내 눈 높이의 위치에 걸려 있는 바늘꽂이에 늘 눈도장을 찍곤 한다. 촘촘한 코바늘 뜨개 가장자리는 레이스로 마무리한 귀엽고 앙증맞 은 바늘꽂이다. 늘 이 방을 들며 날며 눈에 바르던 바늘꽂이를 찍어보고자 햇살 좋은 날을 골라 삼각 대 펼쳤다.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나에게 어머 니는 “뭘 찍노? 그게 뭐라꼬…….” 하시며 사진 찍는 모습을 한참을 살펴보시다가 “그런데 그 안에 머리 카락이 든 거 아나?”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 말씀에 누구 머리카락으로 만들었을까? 어떻게 만들었을까? 마음속 궁금증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이내 사진은 뒷전이고 어머니의 이야기보따 리를 풀어헤칠 요량으로 어머니 앞에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머리카락은 누구 건데요? 혹시 애들 아빠 키울 때 손수 이발하시고 넣으신 건 아니시죠?”

“에이 그건 안 되지, 이발한 건 짧아서 튀어나오고 해서 못써.”

“옛날에는 내 머리가 길었잖아, 머리카락을 모아 두었다가 만들었지.”

 

신랑 머리카락이 아님에 적잖이 실망했지만 곱게 빗질 후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흩어질세라 손으로 조심스레 똘똘 말아 넣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 랩되며 갑자기 빨간 바늘꽂이가 더 정겹게 다가온다.

 

긴 세월 어머니 방에 걸려있어 삶의 수많은 사연을 알고 있는 듯 그렇게 언제나 그곳에 걸려 있었겠지.

지금 바늘은 다른 바늘꽂이로 옮겨가고 이곳에 는 자식 혼사 때 한복 고름에 꽂았던 고름핀과 시침 핀이 꽂혀 있다. 그 밑에는 같은 집에 시집와서 동고 동락했던 동서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매달려 있다.

 

지금은 모두 홀로 된 동서들,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 던 동서들, 서로의 삶을 응원하기라도 하듯 그렇게 어머니 방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그곳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사진을 배우는 중인데 옛 물건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니 어머니는 이야기 나누시다가 갑자기 박스를 하나 내 오신다. 애정이 가득 든 처녀 시절에 만든 물건들을 한데 모아 두셨다 한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옷가지랑 물건들을 모두 한꺼 번에 내다 버릴 것 같아서 따로 한군데 모아두셨다고 한다. 시집온지 삼십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들에 갑자기 눈망울이 휘둥그레졌다.

 

책상보와 베갯잇, 방석보, 양복 덮개, 버선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 그런데 왜 이리 깨끗해요? 별로 안 쓰셨어요?”

“예전에는 어디 좋은데 시집갈 줄 알고 책상보다 뭐다 이것저것 만들었는데 시집와서 살아보니 어디 펼쳐 놓을 데가 있어야 말이지, 한옥 칸살이 쪼만하잖아. 나도 사는 게 바빠 펼쳐보지도 못했지.”

수를 꼼꼼히 훓어 보시는 어머니는 올해 팔십이다.

“조선수, 아플리케수 이런 거 많이 했어. 횃댓보 할 때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했지, 누구는 횃댓보 할 때 몇 달 걸렸다 카든데 나는 한 달 걸렸지, 그땐 친구 들과 모여 얘기도 하고 본을 보면서 했지.”

“수놓을 때마다 친구들이랑 모여 했어요? 재미있었겠어요.”

“아냐 횃댓보 할 때만 했지, 그땐 본이 있었거든, 본을 하나씩 가지고 4올씩 세어가면서 십자수 놓았 지, 다른 것들은 집에서 그냥 했어.”

사진 셔터를 누르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니 이런 사진 찍다가 나중에 나 없으면 울라꼬 그

라지….”

“…….”

“어머니 이거 저 다 주세요~ 제가 안 버리고 잘 보 관할게요.” 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이제 이거 하나만 남았는데, 이게 지금도 들어갈 까?”

버선을 보자마자 대뜸 신고 계시던 버선을 벗으시고 처녀 시절 만들었던 버선을 신어 보신다. 나는 얼른 고개 돌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어김없이 쑥 들 어가자 어머니는 갑자기 웃음보를 터트리신다.

“이게 아직도 그대로 들어가네… 하하하!”

 

 

 지금도 들어갈까 신어 본 처녀 적 손수 만든 버선 ⓒ이현수

 

 

얼굴의 주름과 피부는 세월을 비켜가기 어렵지만 웃음보를 터트리는 모습은 여느 소녀들처럼 밝기 그 지없었다.

옛 물건들을 귀히 여기는 모습에 어머니는 갑자기 장롱 깊숙이 무언가를 하나 더 가지고 오셨다. 작은 다리미판이다. 

“어머나, 귀여워라. 수도 놓여 있네요, 이건 한눈에 봐도 알겠는데요. 다리미판 맞죠?”

“음, 우린 윤두판이라 했지.”

가장자리엔 알록달록 화사하게 십자수가 놓여있 고 위쪽에는 어딘가 걸어 놓을 수 있도록 고리가 달려 있었다. 안쪽에는 나무판 심과 솜을 채워 넣어 딱 딱하면서도 폭신했다. 

“옛날에는 화롯불 앞에서 인두를 넣어두었다가 달궈지면 이렇게 눌러 사용했지. 다른 천에다가 한 번 더 해서 열을 조금 식힌 후에 하기도 했어.” 말로는 부족했는지 어머니는 갑자기 일어서 고리 짝 깊숙이 넣어 두셨던 손수 만든 모시 두루마기를 가져오셔서 달궈지지 않은 차가운 인두로 그 옛날 하듯이 깃과 소매 끝에 인두를 눌러가며 시범을 보 여주셨다.

“이렇게 솔기 모서리, 한복 깃, 소매 부분, 가장자 리 이런 좁은 곳에 누르는 거지.”

박스 안에는 낯선 물건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건 시집올 때 이불 쌌던 자투리 천으로 만든 건데 원래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만 우리들은 헝겊봉지라 캤어.”

 

그 안에는 무명, 명주 자투리 천들이 차곡차곡 접혀 주머니처럼 생긴 헝겊보에 싸매져 있었다. 조각조각 천을 펼쳐보다가 구석에서 솜뭉치가 몇 개 나왔다. 

“어머니 이 솜은 바느질 하다가 과로해서 코피 나면 막으려고 넣어두신 거예요?”

어머니가 피식 웃으며 말하셨다.

그건 목화솜이 아니라 풀솜, 명주풀섬이래.” 하셨다.

“엥? 풀솜? 그건 또 뭐지?” 

명주를 알 턱이 없는 며느리에게 옛날 베 짜던 이 야기를 풀어놓으셨다. 

“명주풀솜은 누에고치를 쪄서 만든 건데 베짜다 가 끊어지면 이걸로 이렇게 비벼서 이으면 되거든. 그때 쓸라고 몇 개 넣어 두었던 거지.”

“우와! 그럼 이런 천들을 모두 손수 짜신 거란 말이에요? 너무 신기해요.”

“그래그래, 그땐 누에도 키우고, 목화도 심고 해서 직접 다 했어.”

명주실로 직접 짠 천으로 치마저고리 만들었던 옷 들은 이미 쓸모가 없어져 고이 해체가 되어 있었다. 이거 실크 스카프 하면 되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그나 마 긴 천을 골라 아낌없이 며느리에게 내어 주신다. 

 

“이거 직접 짜셨다니 아까워 못쓰겠는데요?”

 

 한복 솔기를 다듬었을 인두와 인두판ⓒ이현수          자투리 천을 넣어두는 헝겊보ⓒ이현수                              새색시 적 한쪽 벽을 가리었을 횃댓보, 이제는 이불속보로 숨어 있는 횃댓보에 놓인 십자수ⓒ이현수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손수 키우고 기르던 재료 로 옷감을 만들고 손수 옷을 만들어 입던 그때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의 어머니다. 밥 한 톨, 음식 하나 라도 버리면 죄받는다며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검소한 정신이 어머니의 물건들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큰 천은 자를 때부터 쓰임새를 생각해 허투루 더 크게 자르지 않고 딱 맞게 자르고, 만들다 남은 조 각천은 차곡차곡 헝겊 주머니에 따로 모아두었다 가 더 작은 무언가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었다. 아 이들 옷을 짜고 남는 털실로 양말을 짜고 장갑을 짜 고, 자그마한 물건들을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근검 절약 습성이 배어 있어 어머니의 물건들에는 어딘가 정감이 묻어나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어머니의 물건들은 잘 버리지 않게 된다. 삼베 옷감을 펼쳐보시다가 정 중간에 고 리가 달려 있는 삼베 밥상보 하나를 불쑥 내미셨다. 조각 천으로 만든 밥상보였다. 조각 천의 모양은 각 양각색이다. 의도한 면 분할이 아닌 그대로의 모양 을 사용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서 공간을 이루고 투박한 손으로 가장자리는 네모지고 야무지게 다듬 어 밥상보로 완성되었다. 직선 사이에 생각지도 못 한 곡선을 만난 어수룩한 모양새가 오히려 정감을 주고 미소를 머금게 한다. ‘무얼 만들다가 남은 천으 로 이걸 만드셨을꼬?’에 생각이 머무르자 밥상보는 이야기를 담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소중한 물건 이 되어 버렸다.

 

손이 가지 않고 입지 않는 옷을 앞에 두고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시는 모습, 안경을 끼고 바늘땀을 제거하고, 스포츠 칼라를 차이나 칼라로 바꾸기도 하고, 무언가 머릿속에 그린대로 재단을 해서 재봉 질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코로나로 모두가 마 스크를 쓴 올해엔 새부리형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쓰고 오셔서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하셨다. 팔십 나이에 안경 끼고 겨우 만드셨을 테지만 그냥 보고 만든 그 솜씨에 놀랍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고 싶기도 한 아주 어여쁜 마스크의 탄생이었다.

 

지금 어머니의 헝겊보, 바늘꽂이, 밥상보, 재활용 된 양복 덮개, 이불 속보, 이 모든 어머니의 물건들은 무엇하나 쉬이 버리지 않고 아무것도 허투루 버릴 것이 없음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공을 들이면 하찮 은 것도 가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시대 어 머니의 절약정신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 결과물인셈 이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예전에 내가 준 이불 쓰나?” “너무 무겁고 커서요.”

 

손수 기른 목화로 솜을 틀어 만든 이불이라며 무척 아끼셨다. 남편은 가슴을 묵직하게 눌러주는 목화솜 이불을 무척이나 좋아했던지라 쓰지는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차였다. 어떻게 처리해야겠다며 맘먹고 이불보를 분리하니 또 싸개가 쌓여 있어 켜켜이 벗겨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분리를 계속 했다. 겹겹이 풀어헤치고 나니 그 속에는 수놓인 넓 은 광목 천이 고스란히 솜을 싸고 있었다.

 

스위트홈 이라는 글자도 적혀 있고, 수놓인 나비, 새, 모란은 세월의 흔적에 일부는 이가 빠져 있는 커다란 천이었다. 광목에 4올씩 세어가며 했을 수를 보고 있노라니 이거 버리면 큰일 나겠는데, 하는 생각이 머물러 이내 마음을 접고 솜까지 세탁을 하기로 작정했 다. 솜이 그렇게 무거울지 알 리 없는 나는 요즘 차렵이불만 생각하고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던 터라 물을 먹자마자 이걸 어찌해야할지 난감하기도 그런 난감이 따로 없었다. 

이런 모든 과정을 모르는 어머니는 이불이 깨끗한가 펼쳐보시고는 뜯긴 천을 보시더니  “이거 손으로 홱 뜯었구먼”하신다. 

“… 그래도 꿰매어 놓았어요.”

 

며느리의 부주의함을 알면서도 어머니는 얼굴에 잠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안 쓰는 이불을 처리할 요량으로 이불을 분리하다가 색색이 수놓인 천 때문에 세탁하여 보관해 놓 았다는 말에 어머니는 그 천 이름이 횃댓보라 하셨 다. 작은 수예품들은 따로 보관하셨지만 광폭의 넓 은 횃댓보는 아무래도 쓰임새가 더 컸나 보다. 오랜 세월 사용감으로 수놓은 실들이 뜯어지고, 나의 부주의에 구멍이 났지만 얼기설기 꿰매어 놓은 모습을 보시더니 어머니는 헛웃음을 지으신다.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이어놓은 너무 어설픈 바느질 솜씨지만 그 래도 안 버리고 놔둔 것이 대견한 모양이다. 

“안 쓰면 내 다고.” 

무심코 말씀하시지만 도시락 몇 개씩 싸고 아이 키울 때가 가장 행복했다던 그 시절에 한쪽 벽면을 차지했던 횃댓보임에 더욱 소중한 물건인지도 모를 일이다.

 

 

 횃댓보가 들어있는 이불을 꿰매는 어머니 ⓒ이현수

 

 

이불. 빨래를 하려고 해체하지 않았으면 보지도 못했을 물건들이다. 

“니가 몰래서 그렇지 목화솜은 그렇게 빠는 것이 아니란다.” 

 

평소 이불솜만 생각하고 빨려다가 그 무게에 질려 버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빨래에 비록 솜이 눌렸지만 그 속에 횃댓보를 보게 되어 나름 버리지 못하고 더 의미 있는 이불이 된 셈이다. 광폭의 스위트 홈 글씨, 새, 나비, 꽃들이 수놓인 십자수 횃댓보는 지금도 고이고이 이불속 속에 숨어 있다. 이불보를 다시 모두 덮어씌우고는 여기는 실로 한 땀을 해 놔야 이불이 놀지 않는다며 손수 바늘을 잡으셨다.

리를 쓰윽 하는 순간, 우리 어머니 들이 바느질 할 때면 수도 없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바늘꽂이에 꽂아 두었을 것을 생각하니 어머니집 의 빨간 바늘꽂이가 오늘따라 더욱 생각난다.

요즘은 바늘이 녹스는 세상도 아니지만, 당분간은 샴푸 할 때마다 머리카락을 담아 똘똘 말아 두어야겠다.

이현수(보건교사)
2022-05-03 오후 2: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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