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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게 더 오래된 이야기③-신성세탁소

  • 강수완(시인)
  • 2020-12-01 오전 10: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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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사람들은 구도심과 신도심을 나누는 경계로 사장뚝을 곧잘 꼽았다.
지금은 젊은 층이나 외지인은 언급하지 않는 이름,
그러므로 사장뚝을 아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쉬이 짐작이 된다.
사장뚝은 안동 시내를 북, 남쪽으로 비스듬히 길게 흐르던 하천을 정비하여 복개한 도로인데
낮은 고개를 넘듯이 펑퍼짐하게 살짝 솟은 둑이다.
그를 가로지르며 구시장과 신시장은 안동과 안동 근방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살림살이와
먹을거리, 각종 필요 물자를 공급해 왔다.
구시장에 오래된 가게들이 있듯이 신시장에도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그중 한곳을 눈여겨봤는데 그곳이 바로 신성세탁소다.
 

▲신성세탁소 ⓒ강수완

 

오래된 점방과 사람을 『기록창고』에 연재하는 나름의 까닭 가운데 몇 가지 기준이 있다. 한곳에서 한 가지 일을 묵묵히 오래 해 왔던 직업, 그리하여 하는 일에 자부심과 나아가 얼핏 장인정신까지 깃들어 있을만한 곳을 알아보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취재를 하다가 오산인 걸 알았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살아가는 일이 절박하여 택한 직업이 대부분이었다. 뜻이 있어 한 길을 걸은 일 보다, 사느라고 한 가지 일에 깊이 몰입하다가 지금에 이른 것을 알았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느라 밥벌이를 위한 선택에 다름 아니어서 나름대로 사연이 많았다. 산 식구들 입이 호랑이라더니 입에 밥 한 술 떠 넣는 일이 다급했던 시절을 누구나 살아 왔듯이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 먹이고 공부 시키고 건사하여 세상에 떳떳하게 내어 놓는 일이 가장의 일이었다. 그런 곤궁하고 눈물겨웠던 삶이 지나고 지금은 한숨 돌릴 만큼 모두가 여유로워진 세상이 되었다. 살면서 문득 옛 시절이 안타깝고 가끔은 무척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이런 이웃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 이야기처럼 여겨져 슬프고도 정답게 뒤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는 일이었다.

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선별 요인은 오래된 점방만큼 이나 오래 된 간판이 으뜸이었다. 묵묵한 세월만큼 낡은 간판. 때로는 받침 한두 개가 떨어졌거나 한 글자씩 날아간 채로도 익숙한 상호가 읽히는 간판. 늘 그곳에 있어 있는 듯 없는 듯 겸손한 간판. 한곳에 붙박이로 있다 보니 사람들의 길흉사처럼 동네의 흥망성쇠까지 훤히 알고 있는 간판. 칠이 벗겨지거나 촌스러워도 손님을 기다리고, 단골손님은 그곳을 제집처럼 편하고 쉽게 찾아 가는 간판. 혼자 으리으리하게 크거나 요란한 빛을 밝혀 옆 가게를 가려 막아도 나 몰라라 그만인 이기적인 간판들이 흔한 세상에, 짐짓 어떤 배짱 같은 것이 느껴질 정도로 낡고 오래된 간판은 절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새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은 드물다.

그런 만큼 새것을 갈아치울 기회가 여러 번 지나갔을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고 맞이한 그 격랑의 세월 동안 의연히 간판을 올려놓고 그저 묵묵히 하는 일에 열중하여 살아온 담담한 사람들의 담담한 이야기를 수묵화처럼 풀어내고 싶었다. 간판을 살피다 보면 간판에도 역사가 있음을 감지한다. 상호의 색채라던가 글자체라던가 간판의 형태 등으로 지나간 유행을 짐작하기도 하고, 더욱이 통신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은 전화 앞자리 국번의 변천사도 가늠할 수 있어 자못 설레는 일이다. 지금까지 찾아 간 곳은 아직도 두 자릿수 전화 국번이 적힌 간판이다. 옛것을 좋아하다보니 자연히 오래된 것에 마음이 쏠리는 일이 잦았다.

그런 버릇으로 시내를 다니다 오래된 간판을 기준으로 살피다 보니, 한곳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 사람들의 삶 속으로 한 발자국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으며 또한 이런 이야기들을 요즘 사람들에게 조근조근 시냇물처럼 들려주고 싶었다. 각자의 삶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가득하여 들을수록 찰지고 매끄러웠다. 굽이치는 사연들이 세월 흐르는 동안 나름대로 매끄러워 저만치 조선 씨간장처럼 깊은 맛이 배여 있어 아련하고 즐거웠다.
 

 

 

임자 있는 옷, 이름을 얻은 옷들
세탁소 안은 비닐을 쓰고 촘촘히 걸려 있는 옷들로 가지런했다. 옷에 임자가 있으므로 주인 이름자를 표로 매단 옷들이 사람 이름을 얻어 다시 살고 있는 그곳은, 명찰 같기도 하고 위패 같기도 하고 흰 꽃 한 떨기 같기도 한 모습으로 고요했다. 세탁소 주인의 필체는 다림질만큼 환했다. "퇴직한 교장선생님 필체 같으세요." 진심을 담아 말을 붙였으나 곧이듣지 않는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직업을 하대하는 투로 보일까 순간 걱정했는데 나이 든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 대신 자주 웃고 자주 밝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유쾌하고 편안했다.

누르스름한 종이의 액자 몇 개가 호탕한 주인 옆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젊은 시절 얼굴이 오롯이 사진 속에 남아 있는 세탁업개설신고필증. 1989년 6월 5일. 그 글씨 중에 미리 찍힌 198 년도 중 뒤 공란과 월, 일 자리를 메우고 있는 낯익은 활자체. 인쇄된 문서 용지를 타자기에 넣은 후 필요사항을 다시 사람 손으로 찍어내야 가능했던, 그것은 타자기로 찍어낸 숫자였다. 오래 잊고 살았던 활자체가 반갑고 먹먹했다.

컴퓨터 서체와는 사뭇 다른 정겨운 글자체. 타닥타닥 능숙한 손놀림의 타자기 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세월이 준 변화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옆의 세탁사자격증 액자는 아예 타자기로 찍어낸 숫자조차 희미하게 지워져 읽을 수가 없었다. 주소와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과 발급 날짜의 숫자가 지워질수록 주인의 기억은 또렷한 법이어서, 세탁업을 시작한 연월 일을 빗방울처럼 주르르 꿰어 주었다. 인생사 큰 갈림길의 사연들을 숫자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으리라. 가장 최근의 일보다 지나간 일이 더욱 선명히 기억 속에 또렷하다는 걸. 신성세탁소는 모든 것이 오래되었다.

큰 주물 재단가위도 몇 십 년, 대나무 자도 몇 십 년, 다림판도 몇 십 년, 앉은뱅이 나무 의자도 몇 십 년, 재봉틀도 몇 십 년, 6.25 직후 지었다는 2층 목조 주택은 그 보다 오래되었다. 위층 큰길로 향한 창문 옆에 걸어둔 마늘 몇 접이 오래 묵은 나무 창틀과 묘하게 어울렸다. 나란히 붙어있는 건물 세 채가 똑같이 생겼는데 옆, 두 채는 새로 손을 보아 외관이 깔끔했다.

그러나 겉이 말끔하고 화려한 현대식 건물이 매번 눈에 띄는 건 아니라서 번쩍이는 귀금속 매장을 곁에 두고도 이 오래된 점방의 간판과 건물이 보다 귀하게 보였던 것은, 세월을 고스란히 이마에 둘러쓰고도 눈물겹게 아름다운 주름투성이 우리 이웃의 얼굴과 닮았기 때문이다. 곡진한 사연들이 세월 흐르면서 더욱 빛나는 주름살로 새겨졌기에. 손대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 오래 되어서 가치 있는 것, 그곳에 사람이 깃들어 함께 세월을 보냈다는 것. 살기 바쁘고 어려운 세상에 이런 향기를 품고 산다는 건 대단한 용기나 신념에 앞서 한 사람의 삶이 지녀 온 나름의 향기 아닐까.

옷의 때를 벗기고 다림질하여 새 옷으로 만드는 삶
열두 살 차이 나는 띠 동갑으로 만나 아직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윽한 부부는 옷의 때를 벗기고 다림질을 하여 새 옷으로 만들어 주는 삶에 만족한다고 하였다. 나이가 가늠 되지 않는 평화로운 얼굴과 표정들이 그래서 이루어졌나 싶었다. 대출제도가 없던 40여 년 전, 물려받은 재산 없이 그저 눈뜨고 해 질녘까지 일 하고 알뜰히 모아 지금의 이 집을 샀을 때 참 행복했다고 한다. 미리 세탁업을 하다가 제도에 따라 허가증을 발급받아 걸었다니, 벽에 걸린 빛바랜 액자 보다 더 오래 만지고 다렸을 옷들과 투박해진 손을 들여다본다. 아름다운 손이다.

재봉틀 옆 화분을 얹어 놓은 작고 낮은 나무의자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조금 서툴게 각을 해 놓은 연유를 물으니 그 또한 오래 되었다. 미술을 전공했다는 딸이 어렸을 때 그림을 그리고 주인이 손으로 파서 만들었다는 송판으로 된 의자. 그런 비슷한 각은 나무로 된 옷솔에도 남아 있었다. 윗대의 손재주를 물려받고 내려 주었다는 말솜씨가 과언이 아니었다. 선친은 전쟁 통에 북한에서 배로 내려와 영덕에 이르러 정착하였다.

선친이 즐겨 쓰던 한시가 생각나서 틈나는 대로 옮겨 적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며, 한자로 빼곡하게 시를 적은 공책이 출입문 한쪽에 얌전히 걸려 있다. 가끔 나이 든 손님이 그 공책을 읽어 보고 같이 해석을 해보기도 하다가 글씨체에 감탄하여 가기도 한다니, 옷에 매단 이름표의 한글 필체가 단정한 것은 어쩌면 마땅한 일이었다. 공부를 좀 했었더라면 직업이 달라졌을까요, 미련한 물음에 그 솜씨로 옷을 매만지는 일에 다 쏟아 부었을 정성에 이르러 민망한 말문이 막혔다.
 

 

주인을 잃어버린 옷, 그렇게 세월은 간다
가끔 옷이 주인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단다. 아니 주인이 옷을 놓아버리는 일이라 한다. 세탁을 맡겨 놓고 오래 나타나지 않거나 찾아 가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 되어 있다고 한다. 죽음이란 젊거나 늙거나를 가리지 않아서 그런 옷 들을 처분할 때는 때로 우울하다고 한다. 가까운 곳이거나 동네 단골들은 유족이 직접 와서 맡긴 옷들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세탁소에 둔 옷에까지 생각이 미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하기야 수의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세탁소에 맡긴 옷들에 신경이 닿으랴.

사람의 입성을 깨끗하게 도와주는 직업에도 슬픔은 있는 모양이다. 천장에 매달린 건 옷 뿐만이 아니었다. 노무현대통령 때 상으로 받았다는 봉황이 그려 진 손목시계도, 일하면서 잘 들리도록 귓가에 매달아 놓았다는 녹음기 겸용 라디오도, 흰 전구도 곁에 있었다. 그것들은 서로 묘하게 어울렸다. 통통한 거북이가 새겨 진출입문턱 함석도, 지금은 거의 사라진 동그란 모양의 콘센트와 갈라진 나무기둥의 벌어진 틈 까지 정지된 시간이 이 곳에서 그야말로 잘 늙어가고 있었다.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 기둥과 종일 서서 일하느라 무릎이 닳았다는 주인의 관절이 서로 닮았듯이. 사장둑을 넘어 신시장 가는 길에는 건물과 주인이 서로 정답게 늙으며 살아가는 신성세탁소가 있다. 잘 익은 가을 사과를 건네주는 유중열 사장과, 악기를 배워 동호회 연주를 한다는 부인과, 그 둘을 품고 사는 2층 목조건물이 아름다운 그곳.

* 본 글은 『기록창고』 8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강수완(시인)
2020-12-01 오전 10: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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