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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아카이브②-老시인의 삶을 전시한 생활사기록관 김연대의 문학점심관

  • 백소애(기록창고 편집인)
  • 2020-10-30 오후 4:5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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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안면 대곡리 한실마을에 자리한 김연대문학점심관(ⓒ백소애)

 

길안면 대곡리 한실마을, 시인의 집 현관에는 여전히 '눌운세訥雲世'라는 당호가 걸려 있다. 그를 알게 된 건 편운 조병화 시인이 지어준 '어눌한 구름'이라는 아호 '눌운'으로 고향 땅 모교 귀퉁이에 기와집을 짓고 정착한 지 5년이 지난 2008년부터다. 쉰이 다 되어 등단한 그는 대구에서 사무기기 사업을 꾸려오다가 사세가 더 커질 무렵 사업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홀연 고향으로 왔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후회 없이 모시고 싶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겨 어머니는 말년에 아들과 함께 소박한 행복을 누리다 돌아가셨다. 시인은 마당에서 고개 들어 보이는 맞은편 산중턱에 부모님 산소를 모셔 매일 안부를 챙기는 아들이 되었다.

나는 그의 시 중에서도 2012년 펴낸 시집 《아지랑이 만지장서》에 실린 〈대근 엽채 일급〉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이순 지나 고향으로 돌아온 사촌 아우가
버려두었던 옛집을 털고 중수하는데,
육십 년 전 백부님이 쓰신 부조기가 나왔다.
(중략)
추강댁 죽 한 동이, 지례 큰집 양동댁 보리 한 말,
자암댁 무 열 개, 포현댁 간장 한 그릇,
손달댁 홍시 여섯 개,
대강 이렇게 이어져가고 있었는데,
거동댁 大根葉菜一級이 나왔다.
대근엽채일급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나는 그만 핑 눈물이 났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내 아버지, 할아버지와
이웃들 모두의 처절한 삶의 흔적,
그건 거동댁에서
무 시래기 한 타래를 보내왔다는 게 아닌가.
- 김연대 <대근 엽채 일급> 중

▲ 문학점심관에는 시인의 지나온 삶이 전시되어 있다. 뒤로 그의 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상인일기'가 보인다.

(ⓒ백소애)

 

시인 자신이 자신의 귀향을 "어머니 시대의 따뜻한 마음이 부른 것"이며 "무시래기 한 타래의 마음을 찾아서 그리고 그 마음을 뒤늦게나마 배우기 위해"라고 얘기를 한다. 그는 부모님의 유품과 함께 자신의 기록물을 '김연대문학점심관'에 오롯이 담아냈다 아버지의 유품인 나무지게, 괘종시계, 망건, 갓, 호롱불등과 어머니의 유품인 다듬이돌, 라디오, 가위, 돋보기, 밥공기, 인두, 어머니의 필체가 담긴 내방가사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대구에서 사업체를 운영할 때 썼던 출퇴근카드기계, 전동타자기, 지구본, 고무인, 주산, 급료대장, 입출금전표, 통장 등과 저서, 상장, 신분증, 자격증, 편지, 연하장, 신문스크랩 등 그의 살아온 이력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 명함, 증명사진, 각종 신분증과 소지하고 있던 휴대폰의 변천사(ⓒ백소애)

 

'점심'은 낮 끼니를 일컫는 말이지만, 불교용어로 점'點'자에 마음'心'으로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스님들이 수행 중 마음에 흔들림을 주지 않으려고 공복에 점을 찍듯이 적게 먹는다는 뜻이다. "시지부리한 거 모아놨죠, 뭐." 그의 말과 다르게 '시지부리하지 않은' 기록물은 그의 인생기록관이자 마음의 점을 찍는 쉼표 같은 공간 '문학점심관'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형형한 눈빛을 한 은발의 시인은 이명에 어지럼증에 관절염에 '어쩔 수 없이' 세월에 지는 노인으로 늙어가지만, 남은 기록과 남은 자연 그리고 남겨질 시를 추려내며 오늘도 '아지랑이 만지장서'를 길고도 길게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 본 글은 『기록창고』 2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백소애(기록창고 편집인)
2020-10-30 오후 4:53:43
1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