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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안동- 마종기 시인의 '안동행 일지'

  • 신준영(이육사문학관 사무차장)
  • 2021-08-26 오후 3:03:54
  • 1,467

 

“이승을 하직한 후에는 안동에 와 살고 싶다”

마종기 시인의 ‘안동행 일지’

 

안동행 일지

식물병리학 이순구 박사를 만난다고

아침 일찍 청량리역까지 택시 신세를 지고

크게 달라진 몇 개의 입구에서 허둥대다

중앙선 안동행 무궁화호로 양평을 지났지.

가을 색이 어디쯤 내려가고 있는지 궁금해

열심히 밖을 보니 밖이 언제 왔냐며 손 흔드네.

원주, 제천을 거쳐 단양, 풍기, 영주를 지나

낮은 산 사이에 아담한 안동이 앉아서 반긴다.

역 앞에서 두 분을 만나 첫인사를 나눈다.

내가 살았던 마을같이 만만한 정이 넘친다.

 

광산 김씨 종택의 큰방에다 짐을 풀고

한석봉의 현판이 의젓한 탁청정에 앉으니

안동 소주 생각이 전혀 허풍만이 아니다.

마을을 걸어 고목이 정다운 오솔길 저녁

천등산 봉정사의 천 년 넘은 극락전에는

벌써부터 성질 급한 낙엽이 하나둘 진다.

해진 기둥에서는 천 년 묵은 공기가 만져진다.

색깔 옅은 공기가 오래 숙성되어 향이 좋다.

 

박사는 우리를 인도해주며 행복하시다지만

그 미소가 귀중한 보석처럼 보였던 이유는

착한 아드님을 잃은 큰 아픔을 감춘 때문,

그 가슴 아직 여려서 내가 손대지 못하겠네.

 

군불이 뜨거운 윗목에서 늘어지게 잠자고

서리 맑고 차가운 아침 마을 모습이 궁금해

중천까지 느린 걸음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이 박사에게는 올해도 가을이 오지 않겠지.

그분의 멈춘 생에 내 어깨라도 빌려주고 싶다.

낮술로 마시다 남은 소주병 든 채 멀리를 본다.

얼굴도 모르는 아드님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나 대신 안동 국시를 누가 먹었는지는 알겠다.

아무에게나 차례가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승을 하직한 후에는 안동에 와 살고 싶다.

 

마종기, 『천사의 탄식』( 문학과지성사, 2020) 중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이육사 시인의 묵란도를 기다린다. 비록 영인본이긴 하지만 육사의 손을 떠난 뒤로 그 그림이 안동 땅을 밟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3월 예술의 전당에서 진본을 접했을 때의 심장 박동이 불쑥 다시 느껴진다. 기다리는 동안 한 번 뵌 인연이 있는 마종기 시인의 시집 『천사의 탄식』(문학 과지성사, 2020)을 펼쳐든다. 제목을 보는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안동행 일지’가 서둘러 눈에 띈다. 마종기 시인을 뵈었던 그날의 기억이 바짝 다가온다.

 

*묵란도: 2010년 예술의전당에서 한일강 제병합 100년 특별전

‘붓길 역사의 길’에서 공개한 이육사 시인의 난초 그림.

둘도 없는 친구 신석초 시인에게 선물한 그림이라 전해진다. (편집자)

 

 

 탁청정에서 마종기 시인 부부, 이미령 여사, 이순구 박사 부부 ⓒ이병률

 

2015년 여름, 마종기 시인 부부가 이병률 시인과 함께 안동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녁 식사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이순구 박사 부부와 딸인 이승아 씨, 군자리 탁청정을 지키고 계신 이미령 여사, 이육사 시인의 따님이신 이옥비 여사도 함께 한 자리였다. 마종기 시인이 안동을 찾은 건 이승아 씨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이승아 씨가 편지로 부모님과 함께 뵙길 청했는데 마종기 시인이 초대에 응한 것이라 들었다. 그래서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이병률 시인이 마종기 시인 부부를 모시고 역시 인연이 있는 이미령 여사를 찾은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순구 박사 가족과 헤어진 뒤에 군자리 탁청정 이미령 여사 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밤, 차를 나누며 시인은 막 출간된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 (문학과지성사, 2015)에 서명과 함께 ‘안동의 인연으로’라는 글귀를 남겨 주었다.

*이순구 박사: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2019년 정년퇴임 (편집자)

 

  ▲이순구 박사, 마종기 시인, 이병률 시인 ⓒ이순구

 

그리고 이옥비 여사와 나에게 오래 담아두었던 이야기인듯 육사와 당신 어머니의 인연에 관하여 알고 있냐고 물었다. 마종기 시인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유학을 한 무용가 박외선이다. 육사가 일본 동경을 방문하여 당시 무용계의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그녀를 인터뷰 했고 1937년 『창공』이라는 잡지의 창간호에 「무희의 봄을 찾아서-박외선양 방문기」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인터뷰 기사에서 육사는 박외선을 본 느낌에 대하여 ‘이 작은 아씨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는 행복 된 아씨로구나 하고 속으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유쾌하였다’고 적었다. 또한 박외선은 ‘무용과 일반예술에서 제일 관계가 깊은 것은 시詩라고’ 말했고 육사는 이에 대해 박외선의 무용은 ‘공간에 그리는 깨끗한 환상의 시詩’인 것이라고 표현했다. 문학에 대한 취미를 묻자 역시 그녀는 시를 좋아한다고 답한다. 장래의 가정과 연애에 대해 물었을 때는 ‘책임 있는 몸인 듯해서 경솔하게 연애를 해보려는 생각도 않을 뿐’이 라고 말끝을 흐리며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던 그녀였지만 1939년에 아동문학가 마해송과의 사이에서 마종기 시인을 얻게 된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자신을 통해 태어나게 될 아이가 운명처럼, 무용과 제일 관계가 깊은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시를 쓰며 살게 된다는 것을.

마종기 시인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44년 가족이 모두 귀국해 개성에 정착했다. 1947년에 다시 서울로 이사하여 1965년까지 거주하였고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2년에는 의사생활을 은퇴한 뒤 6년 동안 연세대 학교의 초빙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나 현재는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깊고 아득한 사정을 다 헤아리기는 어려우나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 야 했던 기나긴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승을 하직한 후에는 안동에 와 살고 싶다’고 한 시인의 문장이 해진 기둥에 스미는 천 년 묵은 공기처럼 묵직하게 읽힌다.

그 만남 이후 어느덧 6년, 그 사이 중앙선 안동행 무궁화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바뀌는 계절마다 색이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들면 누구라도 안동행 기차를 탔으면 한다. 원주, 제천을 거쳐 단양, 풍기, 영주를 지나 낮은 산 사이에 내가 살았던 마을같이 만만한 정이 넘치는 아담한 안동이 앉아서 반겨 줄 테니. 광산 김씨 종택의 큰방에다 짐을 풀고 한석봉의 현판이 의젓한 탁청정에 앉으면 안동 소주 생각이 전혀 허풍만이 아닐 것이며, 천등산 봉정사의 천 년 넘은 극락전의 해진 기둥에서는 천 년 묵은 공기가 만져질 테다. 안동국시 한 그릇을 산사람과 죽은 사람이 사이좋게 나눠 먹어도 기분 좋은 곳. 무엇보다 미소가 귀중한 보석처럼 보이는 이순구 박사같은 순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지 않은가. 큰 아픔을 감춘 사람을 알아보고 그 가슴 아직 여려서 손 대지 못하겠다는 시인의 마음 또한 그가 다녀간 자리마다 여전히 머물러 있는 듯하다. 기다리던 묵란도는 무사히 도착했다. 묵란도를 그리던 그날의 시인에게도 차례가 와서 어쩌면 여기, 그리던 고향 안동에 와 계신 건 아닌가 하고 문득 돌아 보게 된다.

 

신준영(이육사문학관 사무차장)
2021-08-26 오후 3: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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