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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풍경③-지례의 한 세대

  • 김복영(사진작가)
  • 2020-12-07 오전 11: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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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영

 

1987년 2월 22일 아침
사진 속 소년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김수형 군이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 그날 마을 점방에서 음료수를 사들고 좋아하던 소년은 어느덧 한 세대를 돌아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들을 둔 마흔여섯 장년이 되었다.
 

ⓒ김복영

 

1987년 초봄의 지례 풍경
초대 포항공대 총장을 지낸 핵물리학자 김호길 박사와 역시 초대 한동대 총장을 지낸 재료공학자 김영길 박사 형제가 나고 자란 집 양동댁과 지례종가가 보인다. 지례는 반변천 상류에 위치하여 면행정이 출장소를 둘 정도로 오지마을이다. 이 마을은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 김방걸이 문호를 연 이후 임하댐에 잠길 때까지 350여 년 동안 문한과 인재가 끊이지 않아 영남의 이름 있는 마을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임하댐이 들어서면서 마을은 수몰 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옛 기억속의 한 장면으로만 남게 되었다. 종가의 무게 때문인가 종손의 책임의식인가? 상전벽해의 와중에도 지촌종가는 홀로 마을 뒷산에 옮겨 앉아 수백 년 지켜온 터전을 내려다보며 14대를 이어온 전통을 놓지 않고 있다. 교통편도 없는 독가촌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종가를 지키고 있는 김수형 씨가 다음 종손이다.
 

ⓒ김복영 

 

1987년 2월 22일 아침
막 떠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아침 첫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나온 승객들이 버스에 오른다. 경안여객 버스는 한보따리 짐을 싣는 아낙을 기다려주고 있다.
 

ⓒ김복영

 

1987년 2월 22일 길산국민학교
임하댐이 건설되기 전까지 지례의 아이들이 뛰놀던 길산국민학교. 1991년 2월 마지막 졸업식에는 송사도 답사도 졸업식 노래도 없이 간호사가 되겠다는 후남이,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경일이, 과학자가 되겠다는 종렬이 단 3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장작을 넣은 난로 위에 동태국을 끓여 마을주민 모두가 참석해 뜨끈한 국 그릇을 비운 쓸쓸한 졸업잔치가 되었다.
 

ⓒ김복영 

 

1987년 4월 9일
초가집에 사는 여인이 손빨래한 옷가지를 빨랫줄에 널고 있다. 슬레이트 지붕과 주물 솥, 지게와 요강, 나무삽, 집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밟았을 댓돌과 시커먼 부엌. 불과 30여 년 전의 풍경이 이다지도 고요하다. 여인은 움직이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지례의 일상 풍경이다.
 

ⓒ김복영 

 

1987년 4월 9일
1987년 4월, 안동문화연구회에서 임하댐 수몰지구 답사를 마치고 지례종가에서 김원길 선생이 준비한 다과를 들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다. 향토사학자 故 서주석 선생과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교수, 이진구 전 안동문화회관 관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종가 마당에서 멍석을 펴고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앉은 회원들의 젊은 날 모습이 이채롭다.
 
* 본 글은 『기록창고』 7호에 수록된 내용이며 E-book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김복영(사진작가)
2020-12-07 오전 11: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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